[취재파일] 北, 확성기 재설치…남북합의 깨려 자해 협박?

22일 북한의 대표적인 심리전 수단인 확성기 방송 시설이 경기도 파주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 인근에 설치돼 있다. 군 당국은 전날 오후부터 북한이 최전방 지역의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 재설치 작업을 하는 정황을 포착했다. /사진=연합

북한이 전방 지역에 확성기를 재설치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비무장지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남 확성기가 다시 설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합의하고 그 해 5월 1일부터 확성기 시설 철거에 들어간 지 2년여 만이다.

북한이 확성기 재설치에 나선 이유는 남북 합의가 깨졌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판문점선언’으로 불리는 합의문을 발표했는데, ‘판문점선언’ 가운데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는 문구가 있다. 이번 확성기 설치를 통해 북한은 판문점선언이 유명무실화됐음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에서 남북합의가 휴지장이 돼 버렸다고 주장한 바 있다.

확성기 재설치하면 누가 유리한가

그런데, 다소 의아한 것이 있다. 북한이 확성기를 재설치하면 우리 군도 확성기를 재설치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은데, 이게 북한에게 유리할까?

남북은 2004년 6월 4일 장성급 군사회담을 통해 ‘서해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 이른바 6·4 합의를 체결한 바 있다.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선전활동을 중지하고 선전수단들을 제거하기로 한 합의다. 이 합의에 따라 전방 지역의 남북 확성기 시설이 철거됐다.

당시 이 합의를 두고 우리가 손해 보는 합의를 했다는 주장들이 있었다.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은 우리 군인들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반면,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은 외부 정보에 목말라 있는 북한 군인들에게 심리적 동요를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남북의 확성기 시설을 모두 철거하기로 하면서 우리가 손해를 보게 됐다는 주장들이었다. 그만큼 심리전에서는 우리가 북한보다 우위에 있다는 얘기다.

대북 확성기. /사진=연합

목함지뢰 도발 당시 우리 대응조치는 확성기 방송 재개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북한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했던 박근혜 정부가 가장 먼저 취한 응징 조치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였다. 당시 북한은 군사 도발을 위협하면서 확성기 방송 중단을 강력히 요구했고, 판문점에서 열렸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장관과 북한 황병서 총정치국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회담에서도 북한의 주요한 요구 사항은 확성기 방송 중단이었다. 그만큼 확성기 방송은 북한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북한이 지금 확성기를 재설치하고 있다고 한다. 남북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 북한에게 불리한데도, 남북 합의를 주요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 남북 합의가 깨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압박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는 아마 남북 합의 때문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확성기 방송 재개 의지 보여줘야

북한이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우리가 먼저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필요는 없지만, 북한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다면 우리도 똑같이 재개할 것이라는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자는 차원이 아니다.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남북 심리전은 절대적으로 북한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우리가 강력한 의지를 보이면 북한이 주춤할 수밖에 없다.

연일 대남 규탄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 움직임은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는 내부 정치적 수요가 어느 정도 해소되어야 잦아들겠지만, 북한의 도발적 움직임이 우리를 향해 실질적으로 구체화되지 않게 하려면 사안별로 강력한 대응방침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대화 의지를 밝히는 것과 함께 북한의 무모한 행동에는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강약 조절이 적절히 이뤄져야 지금의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

, 남한 정부 대응 강도 봐가며 다음 행보 결정

지난 17일 청와대가 ‘몰상식’ ‘사리 분별 못 하는 언행’ 등 강도 높은 문구로 북한을 비판한 데 대해, 북한은 아직 공식적인 맞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남한 당국이 분별을 잃었다”거나 문 대통령 사진에 담뱃재를 뿌려놓는 등의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공식 성명이나 담화를 통해 청와대의 비판을 맞받아치지는 않았다.

청와대의 강력한 비판에 대해 1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북한도 우리 정부의 대응을 주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남한이 뭐라고 하든 제멋대로 나가는 것 같지만, 북한도 남한 정부의 대응 강도를 봐가며 다음 행보를 결정한다. 우리는 남북화해와 협력을 원하지만,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는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할 때 사태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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