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균-김영철 깜짝 환담…”김정은 현지지도 중…농구 못볼 듯”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5일 남북통일농구경기 참석차 방북한 우리 측 대표단의 숙소인 고려호텔에 깜짝 방문해 “지금 우리 (김정은) 국무위원장께서 지방 현지지도 길에 계셔서 오늘 경기도 보시지 못할 것 같다”며 김 위원장의 남북농구경기 직관 가능성을 낮췄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20분부터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우리 측 정부 대표단과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남북 고위급 인사의 이번 깜짝 환담은 만남 2시간여 전 북측에서 우리측에 연락을 해와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북측에서는 김 부위원장을 비롯해 2명이, 우리측에서는 조 장관 등 대표단 5명이 참석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국무위원장께서 어제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보시고, 남측에서 온 여러분들이 우리 국무위원장께서 몸소 발기하신 통일농구경기니까 혹여나 오시지 않겠나 기대 속에 있다는 말씀을 전해들으셨다”며 “조명균 장관 등 여러분들 오셨는데 저보고 나가 만나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해서 이렇게 나왔다”며 깜짝 방문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농구광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 농구 교류를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따라 4일 또는 5일 김 위원장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남북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4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여자 혼합 농구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평양공동취재단

아울러 김 부위원장은 “이것(남북 농구경기)도 북남관계 역사에 하나의 장을 아로새길 특기할 좋은 일이 될 것 같다”며 “발기는 우리 국무위원장께서 하셨지만 기꺼이 응해준 문재인 대통령의 호응이 참으로 고맙고 앞으로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북남관계는 좋은 길로 뻗어나갈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조 장관은 “남북 정상 간 합의에 따라 판문점 선언 이행차원에서 통일농구경기가 열린 데 대해 우리 대통령께서도 상당히 관심 보여주셨다”며 “북측에서 국무위원장님을 뵙거나 관계자를 뵈면 판문점 선언 이행에 대한 남측의 의지를 잘 전달하라는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 장관은 “이번 대회를 준비한 것처럼 판문점 선언을 이행해 나간다면 아마 상당히 빠른 속도로 많은 가시적 성과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이후 환담은 비공개로 전환돼 오전 11시 10분께 마무리됐다. 조 장관은 이날 환담 종료 뒤 남측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김 부위원장과 남북 간 협의가 더욱 신속하고 실용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합의된 내용들을 남측에서 좀더 빠른 속도로 적극적으로 이행해나가자,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런 이행을 통해서 남북의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가시적 성과들을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런 취지의 얘기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남북 간 협의의 구체적 성과를 내기 위한 차원에서 추가적인 고위급회담 개최 방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5일 오전 평양 고려호텔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평양공동취재단

한편, 김 부위원장은 이날 환담 중 “이번 경기 조직과 관련한 전반적 흐름은 국무위원장께서 하나하나 잡아주셨다”며 “경기 도중에 선수들을 소개하고 남측 음악을 들려주고 하는 것도 국무위원장께서 말씀이 있었다”고 전했다. 남북통일농구경기가 치러지는 동안 평양에 있는 경기장 내에서 한국 음악을 틀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농구경기에서 장내 사회를 본 우리 측 아나운서 박종민 씨에 따르면 정작 북측은 한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틀지 말 것을 요구했다. 북측의 요청으로 평양 출발 직전 방북단에 합류한 박 씨는 실제 경기 중간에 틀 한국 아이돌 그룹 노래 30곡을 준비했으나, 북측의 요구에 따라 결국 이를 틀지 못했다.

북측은 남측 취재진을 위해 숙소인 고려호텔과 농구경기가 열린 류경정주영체육관에 간이 프레스센터를 설치하는 등 취재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이른바 ‘최고존엄’의 초상이 담긴 사진과 영상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 북측은 ‘사진과 영상에 혹시라도 최고존엄의 초상이 걸려있는 장면이 삐뚤어지게 잡혔거나, 초상이 한 귀퉁이라도 잘린 채 나가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양해를 구하고 남측 취재진이 찍은 사진과 영상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한 북측 관계자는 김 위원장 모습이 걸려있는 건물 사진이 잘 찍힌 것을 보고는 환한 표정으로 “아주 반듯하게 잘 모시었습니다”며 만족해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북측 관계자들은 이번 경기 취재 차 방북한 공동취재단에게 슬며시 다가와 ‘몸살이 나셨다는데 많이 안 좋으신거냐’는 등 문 대통령의 건강상태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또 취재진의 결혼 여부, 나이, 사는 곳 등 개인적인 질문을 하거나, 서울의 부동산 가격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