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 다녀간 곳 비료지원 1순위

▲ 대북지원 비료를 선적하는 모습(사진:연합)

남북 차관급 회담 합의에 따라 총 20만톤의 비료가 북한으로 전달된다. 북한으로 가는 비료는 복합비료 16만t, 요소비료 3만t, 유안비료 1만t 등이며 소요비용은 9백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미 육로를 통해 1차 지원비료가 북한으로 출발했으며 울산항과 여수항에 ‘백두산호’와 ‘보통강호’가 입항하여 선적을 시작했다.

비료지원을 바라보는 국민들 중에는 “과연 북한에 들어간 비료는 협동농장들에 어떻게 배분될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의문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남한정부가 여러 차례 비료를 보냈지만 정작 북한에서 어떻게 분배되고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일성, 김정일 현지지도 농장 우선배급

북한의 농업생산 물자에 대한 공급은 농업성의 지도하에 도(道) 농촌경리위원회를 거쳐 전국의 시, 군 경영위원회를 통해 각 협동농장들에 전달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 내부방침은 이와 다르다. 영농자재를 비롯한 비료, 농약 등은 김일성,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했다는 협동농장들에 우선 공급하도록 지시한다. 이런 단위들에서 농사가 잘되어야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일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와 지도하에 만풍년을 이뤘다”고 내부에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청산리 협동농장(김일성이 1960년대 현지지도)처럼 전국의 김일성, 김정일 현지지도 단위들에 대해 농기계와 영농자재들을 우선적으로 공급해 왔다. 덕분에 다른 농장보다 수확량이 높아 김일성, 김정일의 지도가 정당하다고 선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따라서 이런 농장들은 국가가 나서서 자동차, 휘발유 등을 지원해주며 비료배급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준다.

그러나 일반 협동농장들에서는 영농자재 공급은 커녕 비료, 농약들에 대한 공급량도 제한돼 있다. 운송수단 역시 자체로 해결해야 하는 현실이다.

일반 농장들은 뇌물 바치고 수송차량 마련

협동농장들에 대한 비료공급은 군(郡) 경영위원회의 지시를 받는다. 예를 들면 ‘평안남도 A농장은 남포항에 들어온 비료를 얼마만큼 실어가라’는 영수증을 받는 것이다. 물론 운수장비는 농장의 자체 힘으로 해결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일반 협동농장들이 배정된 비료를 실어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운송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협동농장의 운송수단은 낡은 트랙터와 자동차가 전부다. 그것도 몇 대밖에 가동하지 못한다. 부속품과 휘발유가 없기 때문이다. 휘발유나 자동차 부품 같은 ‘수입품목’은 국가의 외화벌이 기관들이나 군부대가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협동농장에서는 편법을 쓴다. 국가적으로 트랙터나 자동차 부속품을 만드는 공장에 가서 알곡, 축산물 등 생산물을 뇌물로 바치고 유류나 부속품을 빼내온다.

북한은 트랙터 부속품과 같이 국가경제에 반영되지 않은 생산품은 생산계획 지표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농장과 공장 사이 개별적 계약에 의하여 생산물 바꿔치기를 한다. 물론 이것은 위법이다.

자동차 휘발유가 절박한 협동농장 덕분에 외화벌이 기관이나 군부대 간부들은 한몫 챙길 수 있다. 외화벌이 기관이나 군부대들은 국가에서 배급받은 휘발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동농장에서는 간부들에게 농산물을 바치고 기름을 빼내온다.

비료 최종 수혜자는 군부대와 외화벌이 기관

▲ 육로를 통해 북으로 간 한국비료를 북한 인부들이 내리고 있다.(사진:연합)

자체적으로 자동차와 연료를 준비하지 못한 농장들은 결국 비료 배급권을 포기하게 된다. 이렇게 ‘수취인 불명’으로 남는 비료는 당 간부들이나 군대가 독차지 한다. 결국 인도적 지원 비료가 현금으로 둔갑한다. 장마당에 내다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뙈기밭이라도 일구어 농사를 짓는 일반 주민들도 비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남한에서 보낸 비료는 외화벌이용 아편 재배를 위해서도 사용된다. 노동당에서는 외화벌이 기관이나 군부대에서 재배하는 아편 생산에 비료를 투입한다.

대다수 남한 국민들은 북으로 보내지는 비료들이 북한 동포들의 기아 해결에 도움이 될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동포들은 여전히 굶고 있다. 남한정부는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북한당국은 유상(有商)으로 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관영 매체들이 ‘한국의 비료지원’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상지원’이 알려지면 속된 말로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비료를 주고도 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옳은 지적이다. “비료지원에 조건을 붙이는 것은 굶고 있는 동포들에 대한 치사한 행동”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말도 옳다.

하지만 결국 둘 다 틀렸다. 남북회담에서 비료협상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따지기 전에 그 비료의 최종 도착지가 어디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지금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 20만톤의 비료는 남과 북의 모든 동포들을 기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일 논설위원(평남출신, 2000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