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탈북자] “탈북 브로커 꼭 필요하다” 10명 중 8명꼴

▲ 탈북자 수십 명이 대사관에 진입하는 모습

탈북지원단체 간부로 활동하며 탈북자 입국에 관여한 임영선(43) 씨 체포영장 발부와 관련, 국내정착 탈북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최근 일부언론에서 탈북 브로커들의 일부 편법을 지적하면서 탈북자 사회에서 이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다.

탈북자들은 지난 2월 이른바 ‘기획망명’과 관련한 정부의 탈북자 정책발표에 이어 경찰, 언론이 타이밍을 맞추고 나선 것으로 분석하면서, 탈북 브로커들이 나쁘다는 언론사의 보도와 그렇지 않다는 탈북자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가 할 일 ‘브로커’가 대신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국내정착 탈북자 10명 중 8명은 ‘브로커’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브로커들이 없으면 사실상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탈북자들은 이들을 ‘브로커’가 아니라, ‘국내 입국 도우미’라고 불러야 사리에 맞다는 의견을 보였다.

탈북자 김순호(35세) 씨는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의 실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에 표류하고 있는 탈북자들은 아무런 권리도 없고, 보호시설도 없이 막연하게 사지(死地)를 헤매고 있다. 그래서 같은 동포가 살고 있고, 한 강토인 남한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탈북한 주민들은 북한으로 돌아가면 노동교양대로 끌려가고,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탄압 받을 난민들이다.”

“한국의 일각에서는 브로커가 없으면 탈북자들이 국내로 들어오지 않고, 중국에서 돈을 벌어 다시 북한으로 간다고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돌아갈 사람이 없다고 본다. 중국인들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저임금 차별은 탈북자들에게 호락호락 돈 벌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정말 중국에서 숨어살 때는 날아가는 비행기 꼬리라도 붙잡고 한국으로 들어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탈북자 김정수(30세) 씨는 “사실 탈북자 입국은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며, “정부가 하지 않으니 민간단체들이라도 나설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 일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더 많은 탈북자들을 유도해 김정일 독재정권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에는 이번 탈북 브로커 단속은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본다”는 견해를 보였다.

인터넷 사이트에 오른 탈북자들의 솔직한 심경

탈북자 단체 인터넷 사이트에는 탈북자들의 좀더 솔직한 심경이 올라와 있다.

– 임영선 형님이 해외가 아닌 대한민국에서의 수배는 탈북자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분노가 터져 나온다. 남한에 온 탈북자들이여, 제발 자유의 땅에 대해 거품을 갖지 말라… 임영선 형님, 힘내시고요. 여러 유관 단체를 통해 나설 겁니다. 임영선 형님에 대해 당장 내일부터 단독 법원에 항의를 할 겁니다( ID 은하수)

– 탈북자 한국행 막는 권력자들!!!
3년 전 나는 중국에서 숨어 지내는 어머님과 남동생을 3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데 비용이 천만 원이 든다고 했지만, 너무 고맙게 여겨 즉석에서 지불했고 나의 처도 <하나원>을 나온 다음날 백xx에게 300만 원을 주었다. 그러나 극히 일부 탈북자들 중에는 양심 없이 오리발을 내미는 경우도 있다. 중국공안에 쫓겨 두더지 생활을 할 적에는 남한으로 데려가면 간이라도 뽑아 줄 것 같이 아양을 떨다가도 어떤 놈의 사촉을 받았는지 <하나원>을 나오면 입을 쓸어버린다. 요즘 <하나원>에서는 이런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의한다고 들었다.(ID 이방인)

– 만일 이렇게 되면 누가 나서서 그렇게 위험한 중국에 들어가 탈북자들을 구출하겠다고 하겠는가? 요즘 남한에 온 탈북자들 중 과연 몇 명이 값을 지불하지 않고 왔는가? 최소한의 인건비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 때문에 정부는 탈북자들의 남한 행을 극구 막는가?(ID 자유인)

브로커들이 탈북자의 돈을 진짜 ‘갈취’하는가?

탈북자들은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브로커에 대해 일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의견을 보인다. 한국 사람들은 탈북비용이 모두 브로커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간다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영선 씨에 대한 지난해 1월 경찰조사에 따르면 탈북에 드는 최소 비용은 200만 원(위험수당, 교통비, 체류비, 국경통과비, 제3국 안내 및 체류비, 사고대책비, 기타 잡비 포함)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일부 언론에 보도된 기사내용의 액수는 부풀려진 측면이 있으며, 더구나 탈북자들의 돈을 ‘갈취’한 것은 극히 일부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기획입국’에 대한 정책조정이 있은 후 거의 대부분의 브로커 조직들은 이미 손을 뗐거나, 뒷수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는 휴전선을 통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 한다.

탈북자들은 탈북자와 관련된 뉴스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급적 이슈화되는 것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미 한국에 입국한 거의 대부분이 브로커들의 협조를 받아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들에 따르면 이른바 ‘악덕 브로커’는 극소수이고 선의의 ‘입국 도우미’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일부 언론에서의 브로커에 대한 보도는 편파적인 부분이 많을 뿐더러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탈북자들 중에는 정부, 경찰, 일부 언론이 합동으로 탈북자들의 국내입국을 원천 봉쇄하려는 시도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몇몇 탈북 브로커들에게 압박을 한다고 해서 재중 탈북자들의 인권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정부차원에서 중국 내 탈북자 구원대책이 없는 한 자유를 찾고자 하는 재외 탈북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브로커들의 움직임은 불가피하다는 게 탈북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영진(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