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에 北가족과 더불어 보위부도 기대감 품는 이유

소식통 "南가족 지원 몽땅 회수해와...이후에도 송금 가능성 면밀 감시"

남과 북은 지난달 22일 적십자회담을 열고 8월 20일부터 27일까지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상봉행사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70여 년을 갈라져 살아온 우리 국민들에게 이산가족상봉의 의미는 대단히 크다. 피를 나눈 혈육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헤어져 산 불행을 단 한 번의 상봉으로 지울 수는 없겠지만 만남이 실현됐다는 것만도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이미 추첨의 형식으로 공평하게 상봉대상자를 선정했고 북측 적십자와 생사확인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또한 이산가족정보시스템에 등록된 북측가족이 의뢰한 남측가족의 이름과 나이 등 인적사항을 대조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이산가족상봉의 전 과정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가. 데일리NK 내부 소식통을 통해 상세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 이산가족상봉 대상자 선정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선정을 대체로 당(黨)에서 맡아서 진행한다. 남조선(한국) 출신 주민들은 친척 상봉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설레긴 하지만 누가 뽑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에 충실하지 못하면 선정대상에 오를 수 없다. 때문에 뽑히면 좋고 안 뽑히면 할 수 없고, 하는 식으로 기대한다.

그러니까 어느 날 초급 당에서 불려가서 “동무는 위대한 장군님의 배려로 상봉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는 동무가 당을 따라 충실히 일해 왔기 때문이다”고 통보하는 식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생각도 못한 일에 눈이 뒤집힐 정도로 놀란다. 그제야 그 소식을 옆에서 알게 되고 이웃들이 축하해준다.”

– 이산가족 상봉에 참가하는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당국은 이 같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왔다. 그중에서 남조선 출신은 적대계층에 속한다. 세대교체가 되면서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지난시기에 자식들은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전문학교 정도밖에 보내주지 않았다. 간부만이 잘 사는 이 사회에서 의자 밑에 끼인 인생이나 다름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장사로 살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본인의 활동에 따라 부(富)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

– 이산가족 상봉에 참가할 대상자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개인 준비는 필요 없다. 우리가 잘 산다면 남조선에 있는 친척에게 선물 같은 걸 주겠지만 솔직히 형편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용납하지 않는다. 일명 ‘적(敵)들에게는 선물이 필요없다’는 논리인 것 같다.

대신 국가는 많은 걸 준비한다. 지난 시기엔 이산가족 상봉대상자들을 1차적으로는 도(道)에서 불러놓고 그들에게 남조선에 있는 혈육들을 대할 때 지켜야 할 행동준칙을 학습시켰고 그들의 옷차림 같은 외형적인 부분을 집단적으로 해결하곤 했다. 양복이나 한복 한 벌 해 입자면 많은 돈이 들텐데, 이는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2차 준비는 평양에 모여서 하는데, 국가는 주민들의 가난한 티를 줄이려고 며칠간 잘 먹여주고 그들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준비시킨다. 그리고 국가보위성의 지침에 따른 사상학습과 함께 상봉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을 다시금 강조한다.”

– 주민들이 남한 형제들에게서 바라는 것이 있을까?

“혈육을 만나는 데 바랄 게 무엇이 있겠나. 생사만 확인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민들보다 당국이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전에 상봉하고 돌아온 주민들에 의하면, 당국은 미리 대상자들에게 ‘남측 친척이 돈을 주면 사양하지 말고 다 받으라’고 선전했다고 한다. 당국은 남조선 친척이 반드시 달러를 들고 올 줄로 믿고 있다고 봐야 한다.”

– 무슨 말인가. 남한 친척이 달러를 들고 오는 걸 왜 당국이 기대하고 있다는 건가.

“받은 돈을 다 빼앗긴 사례들도 있다는 것이다. 원래 갔다 온 사람들은 처음에 누가 호기심에 물어봐도 별말을 안 한다. 돈을 받아왔는지조차 아무도 모른다. 보위원이 말을 조심할 데 대한 지시도 있어 처음에는 다들 침묵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소문이 퍼진다. 상봉이 한차례씩 끝날 때마다 소문이 대단했다. 그때 소문으로 들은 말들은 남조선 친척이 (북한) 당국의 처사를 알고 미리 돈을 숨겨서 보내온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한 집에서는 친척이 옷에 돈을 꿰매서 보냈는데 티가 나서 보위원 몸수색에서 나타났다고도 하고 또 다른 집에서는 달러 수십 장을 물건 안에 감춰 보내서 크게 도움 받았다는 소식도 들렸다.”

– 소문 말고 주위에서 유사한 사례가 있었나?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삼촌을 만나러 간 이웃이 있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가난한 동생들이 살림을 좀 펼 수 있게 삼촌이 돈을 좀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의 생각대로 삼촌은 슬그머니 양복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주면서 얼마 안 되지만 형제들과 나눠서 생활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화장실에도 보위부의 눈이 있다고 선전을 들었으니 돈을 꺼내 세어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검은 양복을 입은 낯모를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나더니 대열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국가를 위해 지원 좀 합시다. 애국 좀 합시다. 총 얼마를 받았시요”라고 노골적으로 받은 돈을 내놓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 다 빼앗아 간다는 말인가?

“그 사람은 얼마를 받았는지를 모르는데 뭐라고 할지 몰랐다. 만약 돈을 내놓지 않으면 무슨 변을 당할까?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있는 돈을 통째로 꺼내놓았다. 검은 양복은 돈을 그대로 받아 쥐더니 “수고했다” 하고는 가라고 눈짓했다. 돈을 다 꺼내놓았으니 절반쯤은 주는 줄 알았는데 몽땅 가져갔다.

결국 삼촌에게서 받은 돈을 세여보지도 못한 채 국가지원이라는 명분으로 몽땅 빼앗긴 셈이 됐다.”

– 돌아와 그들에게 부담되는 것은 없나.

“끝나면 추천해준 당 간부와 직장기업소 간부 및 동네사람, 가족 사이에 인사가 오간다. 그중에서 초급당 비서(위원장)가 1순위다. 내가 아는 한 친구의 아버지는 갔다 와서 혈육을 만나게 해줘서 고맙다고 몰래 당 비서에게 천연색(컬러) TV를 선물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산가족 상봉은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 최고의 선물을 안겨준 것과 같다.

이외에도 갔다 온 부담은 한참동안 계속된다. 전보다 갑자기 살림이 늘어나고 잘 살게 되면 보위원들과 보안원들의 호기심이 발동한다. 상봉 후 남쪽과 중국, 안쪽(북한)에서 브로커들이 움직여서 국경 쪽에서 돈을 주고받지 않는가하는 의심을 사게 되고 감시가 뒤따른다. 그러나 이것도 일종의 신호다. 보위원과 보안원들에게 뭔가를 선물해주고, 지나가는 길에도 자주 불러 음식이라도 권하면 더는 기웃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