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선의 일기⑧ ]“이대로면 죽고 말아요”

▲ 동굴속에서의 생활

그 해 12월, 숙부님의 집에 와서 만 2년이 좀 지났을 때였습니다.마침내 우리 남매는 숙부님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이 귀찮은 존재라는 것은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가족들만 있어도 먹을 것이 없는 판에 한참 커 가는 애들이 둘이나 불어난 것이니까요. 게다가 숙부님 집의 형편도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2년 전에 갈 곳 없던 우리들을 데려다 길러준 숙부님입니다. ‘그런 숙부님이 우리들에게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숙부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배고픔이란 사람의 마음을 놀라울 정도로 쉽게 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배낭하나 술 두 병, 주먹밥 두 개.그것이 숙부님 집에서 나올 때 우리가 숙부님한테서 받은 짐 전부였습니다.술은 팔던가 먹을 것과 바꿀 때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 남매는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의 어느 굴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땅에 널려있는 콩과 고구마의 부스러기, 배추의 뿌리나 잘린 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찾아다녔습니다. 근처 마을에 사는 사람이 ‘불쌍하다’며 먹을 것을 가져다 준 적도 있습니다.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양이기는 했지만, 그 사람들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사는 형편에 우리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준 것입니다. 그분들의 친절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굴 속에서 살게 된 후부터 우리 남매는 부글부글 살이 찌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배가 고픈데 왜 그럴까…’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영양실조에서 온 증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저 기분만 나빴고, 이제는 죽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배가 고픈데다 굴 안에서의 생활은 몹시 추워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럭저럭 한달 정도는 어떻게 살아냈지만, 더 이상은 힘들었습니다. 날씨는 더 추워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말 견딜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오빠! 숙부님 집으로 돌아가자.”

어느 날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안돼, 아무 것도 없이 돌아가면 그 자리에서 내쫓아 버릴 게 뻔해. 고구마 줄기나 잎을 좀더 주워 모으지 않으면…”

오빠에게도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먹을 식량을 구해서 가면 숙부님도 냉정하게 내쫓지는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먹을 것이 없어 쫓겨난 것이 확실한 판에 빈손으로 되돌아가면 절대로 받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먹는 양을 줄여서, 모아 온 잎이나 야채의 부스러기를 남겨 놓으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배가 더 고파져서 결국은 다 먹어치우고 말았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이대로 죽을 것 같아요∼”

내가 말했더니 오빠는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 알았다. 한번만 더 있게 해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구나”

이렇게 해서 우리는 1개월 만에 숙부님 집에 찾아가 현관 앞에 섰습니다.

“한번만 더 집에 있게 해 주세요∼”

우리는 우리를 반기지 않는 기색이 역력한 숙부님과 숙모님께 머리를 숙이고 필사적으로 부탁했습니다. 숙부님과 숙모님은 말라빠지고 흙투성이가 된 우리들을 보고 매정하게 문을 닫지는 않았습니다.

집에 들여주긴 했어도 우리가 그들에게 귀찮은 존재라는 사실은 여전했습니다. 어깨가 좁아진 우리들은 전보다 더욱 숙부님과 숙모님의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방안을 보니까 우리들이 처음 집에서 가져왔던 텔레비전과 가재도구들은 전부 없어졌습니다. 이미 누구에겐가 팔아치워 버린 것입니다.

며칠 후 숙부님은 우리들을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이상 더 길러 줄 수가 없다. 너희들은 여기서 나가거라.”

‘또 산에 살 수 밖에 없게 되었구나…’

몸 전체에서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자신이 없었습니다.

“알겠느냐? 나는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정년이다. 연금은 받겠지만 있으나마나한 돈이다. 숙모님은 아직 일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희들까지 길러줄 수는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집 전체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숙부님의 말씀은 한 군데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중국은 여기보다 살기 쉬운 것 같다. 북부지방의 사람들 중에는 중국에 가서 먹을 것이나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너희들 둘이라면 꼭 중국에서도 길러줄 것이라고 믿는다. 무산(茂山-함경북도 북부의 국경도시)까지는 어떻게든 갈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둘이서 중국에 가도록 하여라.”

‘중국…’
옆에 있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가라”는 그 말씀에 나로서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춘석아, 어때…?”

숙부님의 물음에 오빠는 잠시 가만있다가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빠가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나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남매는 중국을 향해 떠나게 되었습니다.

The DailyNK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