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과 ‘처단’이 지배하는 ‘호모 엑세쿠탄스’

소설가 이문열씨 만큼 문단을 넘어 이념적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도 드물다. 이 씨는 지난해 문예계간지 ‘세계의 문학’에 연재한 『호모 엑세쿠탄스』를 묶어 책으로 출간했다.

이 씨는 이 책에서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현 정권 및 386과 주사파 세력, 대북정책 등을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소설가 황석영 씨는 “작가가 오류를 범하는 정치세력에 들어가 부화뇌동하는 것은 문학에 대한 배반”이라고까지 혹평했다.

‘호모 엑세쿠탄스’라는 제목은 작가가 만든 신조어이다. 생각하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언어적 인간을 ‘호모 로퀜스’(Homo loquens)라고 한다면, ‘호모 엑세쿠탄스(Homo Executans)’는 ‘처형(execute)자로서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서로 대립된 세력이 끈질기게 서로를 쫓는, 그래서 결국 서로가 서로를 ‘처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괴이한 사건들이 전개되고, 분명 누군가를 암시하는 듯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신성민은 소위 386세대로 대학시절 한때 운동권이었던 평범한 증권회사 과장. 그는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2003년 어느 날, 막달라 마리아의 현신이라 볼 수 있는 ‘마리’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그 후 그에게는 교회, 성경 등과 관련된 이메일이 전달된다. 또 누군가의 의도적 계략으로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게 돼 회사에서 권고사직에 직면한다.

그는 이후 서초동 팔봉마을(하코방 같은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에 살면서 젊은 보일러 수리공을 만난다. 수리공은 실수로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망치로 내리치고, 쇠톱에 손을 다치지만 일을 끝낸 뒤 손 씻는 걸 보니 두 손 모두 말짱하다.

이상한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시 만난 마리는 자신이 막달라 마리아이며 자신에게는 ‘그 분(보일러 수리공)을 지켜드리러 온 수호천사’라는 말을 한다.

그러다 신성민은 연락이 끊겼던 운동권 출신의 한때 연인이었던 정화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이후 팔봉마을을 나와 친여 시민단체 ‘새여모’(새 세상을 여는 모임) 간부인 그녀의 소개로 지주회사 격으로 둔 ‘새누리 투자기획’에서 일하게 된다.

이후 마리와 보일러 수리공을 다시 만나게 되지만 수리공은 스파이로 몰려 새여모 조직에 의해 숨진다. 또 수리공의 부활을 믿는 마리 일행은 새여모의 대표를 처단한다. 그들 모두는 서로가 서로에게 ‘호모 엑세쿠탄스’(처단자)의 역할을 마치고 이 땅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이 소설에는 대통령 선거와 지하단체에서 정권교체 후 시민단체로 만들어진 ‘새여모’가 등장한다. 또 ‘경제정의촉구연대’ ‘노동정의실천협의회’ ‘건강장수협회’ 등으로 386세대를 풍자해 이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소설은 또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비롯해 안기부, 검찰, 경찰의 안보관련 업무를 풍자하는가 하면, 한국사회의 반미주의와 반기업정서 등을 비판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독자들의 흥분을 예상한 저자는 “소설을 제발 소설로 읽어 달라고 간청해야 하는 고약한 시대”라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그도 그러려니, 80년대 분단문학의 대표작으로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태백산맥』『아리랑』『장길산』같은 소설에 열광했던 그들이 이제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문열의 소설에 핏대를 세우는 셈이다.

물론 작가 이문열은 자신의 견해와 성향을 이 소설을 통해 투여하고 있다. ‘엎어져도 왼쪽으로 엎어지고 자빠져도 진보 흉내를 내며 자빠져야 한다는’ 이 시대에 말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강조하듯 우리에겐 ‘독자로서 스스로 읽고 판단할 기회가’ 있지 않은가.

필자는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처단을 전제로 한’ 상대방 부정행위를 지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역사를 청산 대상으로, 서로 다른 가치관은 제거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행태를 말이다.

진보·보수의 집회가 서로 등을 돌린 채 한 장소에서 동시에 진행되는가 하면, 아들이 아버지 세대의 가치를 ‘수구반동’으로만 치부해버리는 시대이다. 이러한 때에 작가 이문열은 미래를 살아갈 아들들에게, 감히 아버지로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닌지 추측해본다.

김소열/자유주의대학생네트워크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