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北에서 사망, 아들은 미국서 통곡

“아버지…꼭 한 번 뵙고 싶었는데…”

8일 북한의 기생충의학 권위자 라순영(1919-2005) 박사의 사망 소식을 뒤늦게 접한 인수(57)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미국 뉴욕에서 소아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인수씨는 6.25전쟁 중 아버지 라순영 박사와 헤어져 55년 동안 아버지를 가슴 한켠에 품고 살았다.

이날 전화를 통해 갑작스레 부음을 전해 들은 인수씨는 55년 동안 그렇게 소식을 기다렸는데 끝내 당신의 마지막 소식을 접했다며 애통해 했다.

서울 출신의 라순영 박사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 해방 후 서울여자외과대학과 서울의학대학 강사를 겸직했으며 1950년에는 서른을 갓 넘겨 서울의학대학 생물기생충학 강좌장을 맡을 정도로 촉망받는 의학자였다.

이어 1950년 남녘 아내와 외아들과 헤어진 후에는 북한 군의학교, 평양의학대학을 거쳐 의학과학원 위생연구소 기생충연구실에서 줄곧 일해왔다.

라 박사는 특히 폐디스토마의 생물학적 특성과 아메바증의 진단 및 치료 등을 연구해 큰 성과를 남겼다.

’폐디스토마’, ’의학기생충학’, ’인체기생충학’, ’기생충병편람’ 등 다수의 저술을 남기고 1987년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국기훈장 제1급과 노력훈장 등 많은 훈장을 받았다.

북한 보건성 의학과학원은 3일 조선중앙통신에 부고를 내고 “의학과학원 연구사인 공훈과학자.후보원사.교수.박사 라순영 동지가 2005년 9월2일 3시45분 위암으로 85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했다”고 전했다.

이어 “동지는 오랜 기간 교육.과학연구 기관에서 사업하면서 우리 당의 보건정책과 예방의학적 방침을 높이 받들고 우리 나라에서 기생충병을 예방.근절하기 위한 과학연구 사업과 후대교육 사업에 지혜와 정력을 다 바쳐 특출한 공로를 세웠다”면서 “라순영 동지는 비록 서거했으나 주체적인 의학과학 발전과 후대교육 사업에 크게 이바지한 그의 공로는 길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날 고인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면서 영전에 화환을 보냈다.

인수씨는 8일 연합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아버지와 헤어질 당시 3살배기로 기억이 전혀 없었지만 홀어머니와 살면서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며 아버지의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한 불효를 자책해야 했다.

그는 1974년 어머니 이정순(77) 여사와 함께 미국으로 나와 1984년부터 소아과 의사로 활동해왔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인수씨는 “한 번이라도 만나뵐 수 있을까 싶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식을 전하려 했지만 허사였다”면서 이제 묘소라도 찾고 싶다며 목이 메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