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장학금 받은 탈북대학생 성적도 `쑥’

재단법인 천일장학회 이사장으로 지난 6년 간 탈북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왔던 김익진(67) 천일기술단 회장은 최근 이들의 성적표를 받아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지난 23일 서울 구기동 이북5도청에서 열린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한 150명 중 절반이 넘는 80명이 평균 B학점 이상을 받았을 정도로 성적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중 2명은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재학 중 평균 성적이 95점이 넘었고 8명은 평균 A학점(90점)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김 회장은 28일 “북에서 온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특히 영어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성적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국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탈북 대학생들은 대략 300명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북쪽에서 배운 교과 과정이 남쪽과 너무 달라 중도에서 학업을 포기하거나 휴학을 되풀이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대다수 탈북 대학생들은 남쪽 사회에서 실력있는 재목으로 인정받기 위해 남모르게 피나는 노력을 쏟고 있다.

상지대에 다니는 한 대학생은 매달 10만원의 생활비로 버티면서 한의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다.

또 다른 대학생은 2년제 대학을 전학년 만점에 가까운 성적으로 졸업하고 지금은 연세대에 편입해 맹렬히 학구열을 불태우는 중이다.

2001년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제56회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던 탈북자 출신 제1호 한의사 박수현(39)씨 역시 그가 길러낸 장학생이었다.

김 회장이 소문없이 지원한 탈북 학생들은 1999년 이후 총 967명(연인원)으로 이들에게 지급한 장학금 총액만 9억원에 달한다. 외부의 후원없이 순전히 사재를 털어넣었다.

그도 북녘에 고향(함경북도 단천)을 두고 내려온 실향민이다. 남쪽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던 경험들이 혈혈단신으로 남쪽을 찾아온 탈북 학생들을 보면서 고스란히 떠올라 장학금을 생각해 냈다.

김 회장은 탈북 대학생에게 맹목적으로 온정만 베풀지는 않는다. 장학금 신청자들에게 성적표를 제출하도록 한 뒤 기준에 미치지 못한 일부는 과감하게 탈락시켰다.

아직도 대중교통편을 이용해 출ㆍ퇴근하면서 점심도 5천원짜리로 때우는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가 학생들에게 ‘절대 공짜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간 탈북 대학생들의 눈물겨운 홀로서기를 지켜봤던 김 회장은 돈을 벌면 자식들에게만 쏟아붓는 남쪽 부모들의 이기적인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돈을 주고 도움을 주면 그때뿐이고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키울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라고 말했다. 이런 그의 사고 방식이 아낌없이 자신의 재산을 탈북 대학생들에게 내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셈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