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 넘긴 개성회담 타결까지

지난 16일부터 나흘 간 개성에서 밤샘을 곁들여 출퇴근 형식으로 열린 남북 차관급회담은 10개월만에 재개된 남북 당국간 대화라는 점에서 현지에서 들려오는 회담 상황 하나하나에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등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당초 이번 회담은 단절됐던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명운이 걸려 있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했다.

특히 북핵 상황이 기로에 서 있는 현 시점에서 작년 말부터 우리 정부가 물밑으로 꾸준히 대화재개를 요구해온 데 대해 북측이 차관급이라는 고위당국자 회담에 전격 호응해 옴으로써 북측의 결심이 선 게 아니냐는 희망적인 관측도 나왔다.

게다가 2002년 통일부 정책실장으로서 당시 서해교전으로 경색됐던 남북관계에 숨통을 트이게 했던 남북 차관보급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등 회담 경력이 풍부한 이봉조(李鳳朝) 통일부 차관이 우리측 수석대표로 나서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도 회담 첫 날인 16일 “대화가 10개월간 막혀 있었기 때문에 정세인식이나 현안을 놓고 남북간에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마음을 열고 성의를 다하면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회담 전망을 밝게 했다.

이런 기대감은 회담 첫 날부터 이어졌다.

이 수석대표는 기조연설을 통해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핵문제 해결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제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당근’을 전격 제시하면서 6자회담 복귀를 강력하게 촉구했고 북측은 이에 `토’를 달지 않고 경청했다.

비록 북측이 고(故) 김일성 주석의 10주기 조문불허 등에 대한 재발방지와 남북장관급회담 재개를 위한 실천적 조치로 국가보안법 철폐와 합동군사연습 중지를 요구하기는 했지만 회담 때면 들고나오는 의례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북측은 이와 함께 어려운 식량사정을 설명하면서 비료 지원과 함께 식량지원 문제를 제기해 남측의 도움이 절실함도 숨기지 않았다.

북측의 한 회담 관계자도 “남측 일각에서 북이 비료만 받고 회담을 끝낼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데 그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해 이번 회담이 어느 정도 결실을 볼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가중시켰다.

첫날 회담을 마친 이 수석대표도 17일 다시 개성으로 향하면서 “어제 (회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던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며 회담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회담 둘째 날이자 마지막 날이었던 17일 개성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하기만 했다.

1년여간 중단된 장관급회담 재개 날짜와 북핵관련 문구를 합의문에 넣자는 우리측 요구에 북측이 난색을 표명하고 나서 회담이 답보상태에 빠진 것.

이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를 반영하듯 회담 마지막 날임에도 불구하고 17일 오전 오후를 통틀어 수석대표간 접촉은 불과 두 차례, 도합 1시간45분간의 만남에 그쳤다. 특히 오후에 열린 수석대표 접촉이 단 30분에 그쳐 시간이 갈수록 회담이 꼬여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급기야 회담 마감시간을 넘겼지만 진척이 없자 `회담결렬’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서서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상황이 급박하자 정 장관을 비롯한 대북 핵심라인은 삼청동 회담사무국에 집결, 회담을 진두지휘했으나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자 양측은 시한을 넘긴 밤샘회담과 회담 일정 연장이라는 카드에 합의, 일말의 타결 가능성을 남겨놨다.

18일 오전 귀환한 우리 대표단은 호흡을 가다듬고 이날 하루종일 전략회의를 갖고 장관급회담 일정은 반드시 잡되 북핵관련 문구 삽입에는 어느정도 유연성을 가진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19일 오전 다시 개성으로 향해 `마지막 담판’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모두 18일 하루라는 `넉넉한’ 전략 숙의 시간과 합의에 대한 압박감 때문인 듯 이날 회담은 급물살을 탔다.

김만길 북측 단장도 이날 오전 수석대표 접촉을 마치고 나오면서 “합의가 이뤄질 것이다. 기대하라”고 기자들에게 자신있게 말해 회담 전망을 다소 밝게했다.

결국 우리측은 장관급회담과 6.15 평양 통일대축전 장관급 대표단 참석,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점을, 북측은 비료수혜와 핵관련 문구 명시 배제라는 서로의 명분을 세워준 합의문을 이날 오후 8시15분에 교환함으로써 안도속에 나흘간의 회담은 막을 내렸다.

가슴을 졸이며 나흘간의 회담을 지켜본 한 정부 당국자는 “밤샘은 물론 시한을 넘겨가면서 까지 회담에 임하는 등 북측이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회담에 나섰고 나름의 결과가 도출돼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