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파이프라인이 열리지 않는다”

북핵 문제가 6자회담을 통한 해결이냐 대북 압박이냐의 갈림길로 치달으면서 우리 정부가 느끼는 답답함도 가중되고 있다.

지난 해 7월 고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 불허와 탈북자 집단입국 등으로 당국간 회담이 중단된 지 10개월여에 이르지만 회담 재개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남북한 교류협력사업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포괄적인 정책 문제 등을 다룰 수 있는 당국간 회담은 재개 전망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8일 “기존의 남북교류협력 사업은 이뤄지고 있지만 새로운 파이프라인들이 개설되지 않고 있다”면서 회담이 재개되지 않고 있는 점에 답답한 심경을 표시했다.

당국간 회담이 재개돼야 비교적 “큰 사업”을 의미하는 새로운 파이프라인 개설 문제도 논의할 수 있을 텐데 북측이 꼼짝을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답답해 하는 부분은 비단 남북교류협력 문제 뿐만은 아니다.

당국간 회담을 통해 교류협력 사업을 매개로 국제적으로도 회담과 압박으로 의견이 양분되고 있는 북핵 문제와 관련, 외곽지원을 통해 현 긴장국면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6일 조선중앙통신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최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북핵 관련 발언과 천영우 외교부 외교정책실장의 NPT(핵무기비확산조약) 평가회의시 발언 등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은 남북관계가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대북 관계에 들인 그동안의 노력까지 헛수고로 끝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부는 2002년 10월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시인하면서 지난 1993∼94년 이후 다시 북핵 문제가 대두된 것을 계기로 ▲북한은 어떠한 경우도 핵을 보유해서는 안되며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북핵 문제를 근원적.포괄적으로 해결하며 ▲북핵 문제의 직접적 당사자로서 우리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수행한다는 3원칙 아래 외교적 노력과 함께 남북대화 채널을 통해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을 전개해왔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따라 2002년 10월 22일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남북 장관급회담의 결과물로 나온 남북 공동보도문 제1항은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핵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적극 협력하기로 한다”고 명시했다.

물론 남북대화에서 다뤄지는 북핵 문제는 원론적ㆍ선언적 의미에 그치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북핵 문제를 놓고 북미관계가 거의 파국으로 치닫는 듯한 양상을 보이는 현 시점에서 남북 당국간 회담이 열릴 경우, 남측은 이를 중재의 기회로 활용하거나 적어도 한 숨을 돌릴 시간을 벌 수도 있다.

통일부의 답답함은 이런 배경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이봉조(李鳳朝) 통일부 차관은 지난 3일 한 세미나에서 행한 축사를 통해 북측에 6자회담에 조속히 복귀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그동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유용한 채널로 기능해 온 남북 당국간 대화가 재개돼 남북이 북핵 문제의 조속한 해결에 힘을 모으고 남북관계를 한 차원 발전시킬 수 있도록 북한의 태도변화를 촉구해 나갈 것”이라며 남북 대화재개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북한이 당국간 회담을 재개하지 않는 이유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여러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지만 이 가운데 무엇보다 “북한이 현재 북미 관계에 총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나름대로 분석을 내놓았다.

북한이 8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마지못해 북핵 문제를 공동보도문에 포함시키기로 합의는 했지만 핵 문제에 대한 논의 상대는 남측이 아닌 미국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놓고 현재 대미 총력전을 펴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