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거리 아파트 지으려 주민 내쫓으려다 줄줄이 처벌…무슨 일?

국방성 소속 군관·군인들 철거민 세대 찾아가 집기 부수고 행패…전쟁노병 사망에 '발칵'

과학자거리4
북한 평양 중구역의 미래과학자 거리. /사진=북한 사이트 ‘류경’ 캡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평양시에 1만 세대 살림집을 무조건 건설하라고 언명한 가운데, 최근 아파트 건설 지역으로 선정된 모란봉구역 비파동에서 퇴거를 독촉하는 군인들의 폭행에 한 노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평양 소식통은 21일 데일리NK에 “퇴거하라는 명령에도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던 모란봉구역 비파동의 철거민 세대 모임 반장 집에 지난 1일 군인들이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다 그 집에 있던 노인이 머리를 심하게 다쳐 죽게 되는 일이 있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평양시 건설지도국뿐만 아니라 중앙기관, 단체, 군, 기업소 등 각 단위에 평양시 1만 세대 살림집 건설 과제를 내리고, 단위별로 부지와 시공계획을 정해 제시한 상태다.

그중 국방성에는 단층 살림집들이 모여 있는 모란봉구역 비파거리와 새 조국건설 시기에 지어진 노후 살림집들이 들어서 있는 중구역 천리마거리에 각각 1개 동 16층, 13층짜리 아파트를 건설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 건설 과제는 국방성 재정부가 맡게 됐는데, 아파트를 지을 땅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지역 세대에 퇴거를 요구해도 주민들이 움직이지 않아 그간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평양에서는 아파트를 지을 때 해당 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철거민 세대로 분류하고, 아파트가 다 지어지고 나면 들어와 살게 해주겠다는 의미의 ‘입사 담보서’를 줘 내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방성 재정부는 비파거리 철거민 세대에 입사 담보서를 내주지도 않은 채 지난 2월 중순부터 줄곧 퇴거를 종용해왔다. 이에 철거민 세대는 새 아파트에 들어가게 해주겠다는 보장도 없이 퇴거할 수 없다는 뜻을 고수하며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퇴거하라는 국방성 재정부와 이를 거부하는 철거민 세대의 기싸움이 지속되던 중 지난 1일 새벽 건설상무 책임자로 있는 국방성 재정부 부부장(상좌)이 경무부 소속 경무관과 경무원(우리의 헌병) 10여 명을 대동하고 비파거리 철거민 세대 모임 반장 집에 무작정 쳐들어가 집기를 깨부수며 나가라는 협박을 가했다.

당시 그 집에는 80대 노인이 있었는데, 군인들이 들이닥쳐 헤집는 통에 3면 경대(거울)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맞아 쓰러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 노인은 그 즉시 구급차에 실려 평양1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소식통은 “노인은 하필 그날 철거민 세대 모임 반장인 아들의 집에 와있다가 화를 당한 것”이라면서 “그런데 그 노인이 전쟁노병에 공화국 영웅이라 문제가 더 크게 번졌다”고 말했다.

국방성 재정부 부부장은 철거민 세대 모임 반장에게 위협을 가하면 다른 철거민 세대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순순히 퇴거하리라는 생각으로 이 일을 꾸몄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로 노인이 사망하면서 출당·철직·제대되는 것은 물론 무기형까지 받게 됐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실제 노인이 사망한 직후 철거민 세대 모임 반장 등 가족들은 “인민군대가 와서 사람을 때려죽였다”면서 중앙당에 신소했다는 전언이다. 이로써 재정부 부부장은 군사재판에 넘겨져 무기형을 선고받았으며, 동원된 경무관과 경무원 10여 명은 군 보위국 구류장에 있다가 군 노동연대에 보내진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중앙당으로 신소가 올라온 사건이라 더욱 엄중하게 다뤄졌다”며 “결국 이들은 당의 사상과 어긋나는 행위를 한 것으로 무거운 처벌을 받았고, 그 가족들까지 평양에서 추방돼 오지로 가게 됐다”고 전했다.

한편, 이 사건 이후 국방성 몫으로 떨어진 부지와 건설 계획은 평양시 수도건설여단에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국방성은 철거민 세대에 국돈(북한 돈) 1만 달러어치를 배상금으로 주는가 하면 이들이 살 집까지 마련해주게 됐고, 국방성의 건설 과제를 대신하게 된 수도건설여단은 해당 부지에 아파트를 짓게 되면 이 가족에게 한 채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