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6.25때 정치범 대거 납북·학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9.28 서울 수복’을 앞두고 북한군이 철수하면서 대규모로 정치범 등을 강제 납북시키고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내용을 담은 美국무부의 기밀문서가 국내에 최초로 공개됐다.

15일 사단법인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공개한 1950년 10월13일자 미 국무부 기밀문서에 따르면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하기 전인 9월17일에서 28일까지 서울 내 감옥에 수용됐던 정치범 1만∼2만여명이 사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서는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7천∼9천여명의 정치범들은 9월17일부터 3일간 동대문밖 철도역까지 이송됐으며, 이들은 밤시간대 전차를 이용해 춘천과 원산ㆍ평양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마포형무소에 있던 정치범 1천200∼1천400여명의 행방과 관련, 9월17일 밤 모두 사라졌고 이들은 의정부 도로를 따라 북으로 걸어 올라간 것으로 추정되며 서대문과 마포형무소 수감자들은 모두 손이 묶인 채 끌려갔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대부분은 서울지역 공무원과 경찰ㆍ군인출신들이 다수였고 나머지는 소위 ‘반동분자’나 ‘친제국주의자’로 분류된 사람이었으며 장로교 목사와 소수 감리교도도 사라졌다는 것.

문서는 이어 체포와 구금은 8월초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마지막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은 9월 28일 유엔군이 서울 전 지역을 탈환한 것으로 잘못 판단하고 서울 북부와 동ㆍ북부지역에 모습을 나타냈다가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편 공개된 문서에는 강제 납북과정에서 북한군에 의해 자행된 학살과정 등이 비교적 상세히 기술돼 있다.

이 문서는 9월22일부터 26일까지 경기 의정부 도로에서 1마일 가량 떨어진 서울 동ㆍ북부지역에서 성인 남녀와 어린아이들이 50명씩 무더기로 총살당했다는 등 당시 가슴 아픈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당시 대사관직원과 해군장교들은 많은 수의 사체를 봤고 무덤 근처에서 200구가 넘는 시신을 발견했지만 유족들이 시신 대부분을 찾아가 이곳에서 총살로 희생된 사람이 대략 1천명 정도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문서는 대사관직원들이 의정부 가까운 곳에서도 사체 50여구 이상이 매장돼있는 큰 무덤 2개를 발견했으며, 이 사체들은 북으로 끌려가던 수천여명의 무리 중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희생당한) 사람들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문서는 또 대사관직원들이 9월2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한강에서 동쪽으로 30마일 가량 떨어진 경기 양평지역에서 성인 남녀 800여명 정도가 강둑에서 총살됐던 사실을 주변 목격자들 증언을 통해 확인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조사를 통해 (북한) 공산당 명령하에 대한민국 음악가ㆍ공무원ㆍ목사 등 많은 사람들이 북으로 끌려갔고 당시 공무원 자녀를 포함한 수천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은 “그간 말로만 전해왔던 한국전 당시 강제납북과 정치범 학살과정에 관한 문서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자료 발굴을 계기로 강제납북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족협의회는 오는 23일 협의회 부설 ‘한국전쟁 납북사건 자료원’을 개원하고 전쟁 납북사건 관련 자료수집과 납북사건 증언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영상과 문서에 채록하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협의회는 지금까지 납북사건 증언 영상물 20여건을 완성해 놓았으며 향후 자료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관련 자료를 상시 공개하고 비정기적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연구사업을 벌여갈 방침이다.

이 이사장은 “강제납북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마당에 영상물과 문서채록 작업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며 “증언 채록작업을 최우선으로 해 자료원을 내실있게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