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美인권거론에 `경고’ 보내

북한은 23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탈북자 출신의 조선일보 기자 강철환씨를 만나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한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6자회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6자회담의 취지와 의제가 달라졌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부시 대통령과 강씨의 만남을 거론, “미국의 대조선 정책의 반영으로 우리에 대한 또 하나의 인권공세”라며 미국의 대북(對北) 적대정책이 여전한 데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또 “미국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6자회담 재개와 진전을 바란다, 북을 주권국가로 인정한다고 하지만 한갓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미 고위층이 들고 나온 인권타령은 6자회담 재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밖에 달리는 풀이될 수 없다”며 6자회담과 연계지었다.

부시 대통령과 강씨의 면담을 계기로 미 행정부에서 더욱 거세질 대북 인권공세를 차단하고 향후 6자회담에서 대북 인권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는 점에 대비해 6자회담 복귀문제와 연계해 미국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6자회담을 재개하고 북핵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대북인권 공세를 더 이상 펴지 말 것을 경고한 셈이다.

그러나 북한은 부시 대통령과 강씨의 면담을 6자회담 불참과 직접적으로 단정짓지 않으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중앙통신이 “그런 것들을(인권문제) 회담장에 끌고 가야 회담 자체를 혼탕시키는 결과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는 것을 미국은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 대목에서는 ’6자회담에 나오기는 하겠지만 인권문제는 거론하지 말라’는 입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중앙통신은 부시 대통령을 ’미 최고당국자’로 지칭하는 등 논평의 전체적인 톤이나 표현에서 다소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미 고위당국자의 대북 비난 발언에 원색적인 호칭과 비난으로 대응을 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로 지칭하고 미 백악관 대변인도 미스터 김정일이라는 호칭을 강조해 사용한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부시 대통령과 강씨의 면담에 대해 외무성 인터뷰가 아니라 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대응한 데서도 북한의 신중한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미 고위당국자들의 대북관련 발언에 대해 대부분 외무성 대변인의 중앙통신 인터뷰 형식을 통해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중앙통신의 이날 논평은 최근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 모두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과 맞물려 있어 더욱 주목된다.

북한은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체제안전보장과 궁극적으로 북미간의 ‘보다 정상적인 관계’(more normal relationship) 추진 방안에 합의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동영장관과 면담(6.17)에서 ‘7월 중 회담 복귀 용의’를 표명한 이후 대미 비난의 톤과 횟수를 부쩍 줄이고 있는 모양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2일 북한에 대한 자극적 발언 자제를 요청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유념하겠다’고 밝히는 등 미국 측도 상당히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실장은 “북한 인권문제 거론은 체제 붕괴쪽과 분명히 연계돼 있지만 북한은 6자회담 재개에 큰 장애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며 “북한도 미국과 관계를 끊고 싶지 않은 만큼 6자회담에 나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회담을 진행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