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에 대한 일본과 우리의 차이

지난 25일 신문을 훑어보다가 소박한 광고 하나에 시선을 잡았다. <북한에 인권의 빛을! 동아시아에 진정한 평화를!> 이라는 제목 밑에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드리는 편지’라는 부제가 이어졌다. 그 아래는 신용카드 보다 조금 큰 크기의 빛바랜 흑백사진이 보였다. 1978년 북한에 납치되어 KAL기 폭파 공작원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일본인 타구치 야에코씨. 그녀가 납치되기 전 어린 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제목과 사진만으로도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홍보하는 광고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드리는 편지’라는 부제가 묘한 흥미를 유발했다. 사진 밑으로 이어지는 깨알 같은 글을 읽어 내려갔다.

2단으로 편집된 편지의 왼편은 예상했던 대로 일본과 한국의 납치 피해자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사진 속 야에코씨의 사례를 들며, 강제로 사람의 몸을 구속하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갈라놓고, 악행에 가담할 것을 강요하는 ‘납치’는 가장 비참한 인권침해라고 강조했다.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가 가장 큰 나라는 한국이라는 점도 잊지 않고 설명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이 편지의 진가는 오른편에 실린 내용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가혹한 정치체제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북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 납치와 북한 민중의 노예화는 인권의 부정이라는 똑같은 뿌리에서 나온 비극이기 때문이다”는 글에는 ‘인간의 기본 권리’는 자국민뿐 아니라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똑같이 소중하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민중에 대한 자유의 억압이 전쟁의 위험을 낳는 것이라면 나날이 커지는 북한의 평화에 대한 위협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기본적 인권의 확대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글에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의 열쇠가 북한의 인권개선과 민주화에 있다는 판단을 드러내고 있다.

이어 “평화적이고 원활한 한반도의 통일은 북한이 민주화 되어야 가능하다”며 “한일 양국민이 서로 손잡고 북한을 진정한 민주주의 나라로 바꾸기 위한 투쟁에 나섬으로써 평화롭고 번영하는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만들자”는 호소로 끝을 맺고 있다.

이 편지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의 해법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와 북한 문제의 해결의 정답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절실히 외치면서도 북한의 민주화 없이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복원도 유지도 불가능한 김정일 수령독재체제와 공존해보겠다는 비현실적인 대북노선을 ‘민족’이나 ‘평화’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날 일본의 하시모토 오사카(大阪) 지사는 북한에 단파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시오카제’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신들이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북한에 있는 납치자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말라”며 납치자 송환을 위해 “지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관료가 라디오에 출현해 북한에 있는 납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것은 도쿄 지사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한다. 일본보다 더 큰 납치 피해를 역사의 상처로 안고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아직까지 관료가 직접 북한에 있는 납치자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구출을 공개적으로 다짐한 적이 없다.

이날 우리가 접한 일본 발 편지와 육성은 북한 인권개선과 민주화 운동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지를 의미심장하게 시사하고 있다. 민(民) 관(官) 모두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실천적 대응에 문제가 없는지 진지하게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