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제와 오늘] 잊혀진 영부인 II : ‘존경하는 어머님’ 고용희

김정은의 모친. 우선, 북한에서 ‘선군 조선의 어머니’라고 호칭되는 그의 이름은 ‘고영희’가 아니라 ‘고용희’다. 아래에 그림에 볼 수 있는 것처럼, 고용희의 이름은 노동신문에 나온 적도 있다.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가 공훈배우칭호를 받았다고 노동신문이 지난 1972년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일본 출신 고용희는 수많은 재일교포와 함께 북한에 귀국했다. 그는 언제부터 김정일과 사귀게 된 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70년대라는 주장이 많다.

2002년경 북한은 그를 찬양하기 시작한다. 재미있게도, 고용희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고, 대신 ‘존경하는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아마도 북한 당국은 고용희라는 배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위대한 장군님’의 배우자가 곧 일본 출신 배우인 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필자는 이 시대에 나온 ‘존경하는 어머님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 끝없이 충직한 충신중의 충신이시다’는 북한 기밀 문헌을 확보했다. 자료는 ‘존경하는 어머님은 항일전의 그날 어버이수령님을 높이 모시고 우리 혁명의 대를 굳건히 이어 놓으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와 꼭 같으신분, 우리모두가 따라 배워야 할 충신의 위대한 귀감이시다’고 강조했다.

아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당시 북한 그림에도 ‘김정일=오늘의 김일성, 고용희=오늘의 김정숙’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대원수복을 입고 있는 김일성, 원수복을 입고 있는 김정일, 고용희 그리고 김정숙의 동상. / 출처: 러시아 외교관들이 쓴 책 ‘김정일 시대의 일몰’ 中

위에 언급한 문서에서 고용희 찬양노래까지 나왔다.

어머님 밝은 미소 우러러 볼 때면
마음엔 천만송이 꽃이 핍니다.
아버지장군님의 건강을 위해
어머님 영원토록 젊어 계시라

고용희는 2004년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김정일은 새로운 여자친구인 김옥 씨와 사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왕좌를 이은 사람은 고용희의 아들인 김정은이었다. 김정은 계승 캠페인이 그의 생일인 2009년 1월 8일 시작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후 북한 당국이 김정은의 모친인 고용희 찬양 영화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님’ 내부에 배포하였다고 한다.

영화 내용을 보면 역시 2000년대 초기 선전 캠페인과 매우 비슷하다. 아마도 영화는 그 때에 촬영되었고, 나중에 ‘청년대장’ 김정은에 관한 내용이 추가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영화에서 고용희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고, ‘어머님’은 김정숙과 비교되었다. 아래에 스크린샷에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영화에 고용희는 김정숙과의 닮게 보이도록 일부러 총까지 들고 나왔다. 군사 경험이 없어 매우 어색하지만 말이다.

기록영화에 나온 고용희. / 사진=북한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니’ 캡처

또한 영화는 ‘존경하는 어머님’을 김정숙의 계승자로 보여 주면서 고용희가 김정일에게 그가 현지지도에서 쓴 외투를 줬다고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어버이 장군님’이 군복이 아니라 인민복을 입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용희도 어떤 칭호나 직위를 원하지 않았고 하면서 그의 겸손을 강조하였다.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고용희가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쓰라고 지시한 부분이다. 영화의 따르면 그녀는 이 노래가 군대에서 나와야 한다면서 빨리 쓰라고 지적하였다.

이 같은 점에서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다른 북한 노래인 ‘영원토록 받들리 우리 장군님’의 표절이라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 ‘영원토록 받들리 우리 장군님’은 1996년 5월 5일자 노동신문 4페이지에서 나왔는데 1997년에 이 노래 기반으로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나왔다.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 ‘영원토록 받들리 우리 장군님’과 ‘김정일 장군의 노래’ 비교. / 사진출처=RENK

또한 이 영화에서 군복을 입고 있는 김정은의 사진이 나온다는 점도 흥미롭다. 아래에서 처럼, 김정은은 육군 대장의 군복을 입고 있었고, 김일성종합군사대학 졸업 휘장도 차고 있었다. 영화는 이 ‘청년 대장’을 키운 ‘존경하는 어머님’을 찬양하였다.

현재에 이 사진 외에 군복을 입고 있는 김정은의 사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북한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니’ 캡처

그러나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북한 최고 권력자가 된 김정은은 어머니 찬양 캠페인을 바로 중단시켰다. (관련기사 : 김정은 生母 ‘재일교포’ 고영희 우상화로 골머리)

어머니와 관계가 나빴을까? 일본 출신 그의 평전은 북한 사상에 맞지 않았을까?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다. 결국에는 고용희도 김성애와 함께 ‘잊혀진 영부인’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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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애와 고용희를 비슷한 인물로 보기 어렵다. 김성애는 참으로 야심적인 여자였다. 그러나 권력 투쟁에 패배한 그녀는 평범한 사람으로 사망하였다.

고용희는 야심이 거의 없는 배우였다. 남편 김정일 만나기 전에 이미 성공한 그는 ‘장군님의 안해(아내)’의 이미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김성애와 고용희 스토리에서 공통점이 있다. 김성애도 고용희도 찬양 캠페인을 받았고 주요 호칭은 ‘존경하는’이었다. 남편이 죽자 ‘존경하는 위원장’ 김성애도 ‘존경하는 어머님’ 고용희도 국가 담론에서 사라졌다.

현 ‘존경하는 녀사’ 리설주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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