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제와 오늘] 두 개의 ‘노동신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내부에 분배되고 국외에도 수출된다. 즉, 우리가 인터넷 또는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노동신문은 북한 간부들이 보는 것과 같다.’ 

북한에 관심을 두는 전문가나 일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본 칼럼을 보면 이런 주장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을 듯 하다. 필자는 1992년에 같은 날짜에 나오지만 다른 내용을 갖고 있는 노동신문을 찾았고, 이 신문의 국내용과 수출용이 따로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우게 됐다.

이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1992년 당시 북한 역사를 기억하여야 한다. 김정일 권력 승계 당시 주요 사건 중에 하나는 1992년 4월 20일 공화국 원수(元帥) 칭호 수여다. 당시 북한에 김일성 외에 원수가 존재하지 않았고, 김일성이 대원수까지 오른 후 딱 1주일 뒤에 김정일은 당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와 함께 원수 군사 계급을 받았던 것이다.

아래 사진은 바로 다음 날인 1992년 4월 21일에 발간된 노동신문이다. 이 사진이 나온 신문은 해외에 수출되었고, 한국에도 보관되어 있다.

1992년 4월 21일자 노동신문 1면(국내). /사진=필자 제공

신문이 발행된 나흘 후 평양에 인민군 창건 ‘60돌’ 기념 열병식이 진행되었다. 이 열병식은 ‘영웅적 조선인민군 창건 60돐’이라는 기록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이 나온다.

이 영화에 등장한 1992년 4월 21일판 노동신문 1면이 통일부 북한자료센터나 각 대학 도서관 등에 보관하고 있는 신문과 명확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즉 앞 부분에 신문 제목, 날짜, 구호 그리고 김정일 원수 칭호 수여 명령은 같지만, 아래 부분은 차이가 있다. (▶관련 링크 바로 가기)

1992년 4월 21일자 노동신문 1면(기록영화). /사진=영상 캡처

다시 설명하자면 우리 도서관엔 오진우 공화국 원수 칭호 수여 등 소식을 싣고 있지만 기록 영화엔 ‘우리 인민과 인민군 군인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심의 표시’라는 사설이 등장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우리 도서관 노동신문에서 이 사설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1992년4월 21일판 1면이 아닌 다음 날 22일판 신문의 2면에 게재돼 있었다.

그렇다면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먼저 영화가 나올 때 신문에 언급된 인물이 숙청된 게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해 보인다. 북한에선 숙청한 인물을 일반적으로 사료에서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군관 중에 숙청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오진우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라고 부르지 않도록 신문을 수정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1992년 후에 김정일과 일반인인 오진우가 같은 계급을 보유하지 않도록 북한 당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아래에 ‘조선인민군 원수’라는 또 하나의 군사 계급을 도입, 오진우 추도문에 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아니라 ‘조선인민군 원수’라는 호칭했다. 그러나, ‘영웅적조선인민군 창건 60돐’ 기록영화에서 오진우를 직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라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 가설도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 감독이 영화 주인공인 김정일에게 주의를 집중하기 위하여 신문을 편집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신문이 그렇게 아무나 수정할 수 있나라는 의문과 함께 만약 그런 의도라면 뒷 부분을 안 찍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1980년대부터 노동신문을 출판할 때 가끔 국내용과 수출용 신문을 따로 출판한다는 소문은 있었다. 우리 도서관에 볼 수 있는 노동신문은 곧 수출용 신문이고 영화에 실수로 국내용 신문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필자는 이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탈북민을 만나보기도 했다. 1980년대 초에 태어난 이 친구는 북한에 있었을 때 한 번 노동신문에서 ‘존경하는 김성애 녀사’라는 표현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김일성의 둘째 부인인 김성애를 실제 ‘존경하는 김성애 녀사’라고 호칭했었다. 하지만 우리 도서관에 있는 노동신문에선 1970년대 초반에만 이 호칭이 나오고 1974년 김정일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역시 이 친구도 수출용과 내용이 다른 국내용 노동신문에서 이 문구를 본 게 아닐까.

북한을 연구하는 인물이 항상 주시하고 있는 자료인 노동신문. 우리는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신문을 본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일반적으로 그렇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