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금 ‘국가 해체’ 진행 중

주관적 희망과 객관적 현실인식은 분명 다르다. 내공이 깊을수록 그 간격은 더욱 넓어진다. 지금 이런 자세가 절실히 요구되는 문제가 바로 북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유럽 순방 중에 이와 관련하여 중대 발언을 했다. 그 요체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는 희망과 또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현실인식의 일치다. 그렇다면 4월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당시 친중 괴뢰정권이 들어설 것 같아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고건 전 총리의 고뇌는 헛된 것이었을까.

틀린 건 붕괴론이 아니라 조기붕괴론

김일성이 사망하고 대량 아사와 탈북이 발생했던 1990년대 중반 ‘이제 곧 망할 것’이라는 ‘조기붕괴론’이 많은 이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조기붕괴론은 빗나갔다. 경제파탄이 정치 위기로 직결되지 않는 수령 전체주의의 강고함을 과소평가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렇다면 김정일 체제의 붕괴 가능성은 사라진 것일까. 중요한 것은 과녁을 빗나간 것은 조기붕괴론이지 붕괴론 자체는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10년 전과 비교해 오히려 붕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국가해체의 진행’이다.

북한 경제는 이미 김정일 정권의 통제를 벗어났다. 당국은 10년 넘게 계획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발생적 시장 메커니즘의 확산에 나름대로 적응해 보겠다고 2002년 여름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내놓았지만, 현실은 저 멀리 도망가 버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이 제2의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겉모습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개혁 개방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게 중국처럼 ‘현실선도형’이 아닌 ‘현실추수형’이라는 데에 김정일 정권의 고민이 있다.

정권의 통제를 벗어난 것은 경제만이 아니다. 주민들의 의식도 놀라운 변화를 겪고 있다. 배급제가 유지되던 시절 ‘수령님 덕분에 먹고산다’던 생각은 ‘내가 먹고사는 것과 장군님과는 상관없다’로 바뀌었다. 작년 초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 궁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수천 명의 북한 주민들을 보았건만 그 누구의 눈시울도 붉어져 있지 않았다. ‘어버이 수령’의 장례식에서 오열하던 그 ‘충성스러운 인민’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바깥 세계의 작용’이 중요

이 모든 것은 수령 전체주의 체제의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정치적 변혁이 나타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처럼 내부에서의 적극적 저항보다는 바깥으로의 소극적 탈출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급변 사태가 일어나기는 힘들다. 아마도 그 계기는 후계체제를 둘러싼 권력 투쟁의 심화에서 비롯될 것이다. 경제 파탄과 의식 변화라는 밑으로부터의 변화가 권력 투쟁이라는 위로부터의 변화와 맞물릴 때, 국가해체의 진행이라는 양적 축적은 김정일 정권의 몰락이라는 질적 전화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깥 세계의 작용’이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김정일 정권의 수명이 연장될 수도, 단축될 수도 있다. 나는 물론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통한 군사적 긴장 완화→개혁 개방을 통한 경제 재생→수령 전체주의 체제의 민주화라는 단계적 체제 이행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길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연성 붕괴(soft collapse)라는 차선책을 은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2000만 동포를 연옥 같은 세상에서 하루라도 빨리 구출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두 개의 길(two track)이어야 한다. 지도자는 희망적 사고의 유혹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오직 한 노선만을 고집함으로써 ‘북한의 중국화’를 방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신지호 / 객원칼럼니스트 (자유주의연대 대표 • 서강대 겸임교수)
(동아일보 12월 15일자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