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핵신고’ 고비 못 넘은 듯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3~5일 방북 협의에서 북핵 신고 문제에 대한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순항을 거듭하던 6자회담이 고비를 맞은 듯한 양상이다.

힐 차관보의 이번 방북은 6자회담 10.3 합의에 따라 연말까지 마치게 돼 있는 북핵 신고의 쟁점 조율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번 협의에서 최대 쟁점인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 의혹 등에 대한 북.미 간 인식 차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는 것이 외교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힐 차관보는 5일 “분위기는 긍정적”이라면서 “그들이 (신고의) 시한을 맞출 준비가 돼 있다고 확신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북측이 모든 시설.물질.프로그램을 포함시킨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를 원했다”면서 “분명히 (북.미 간에) 일부 차이점은 있다”고 말해 신고 목록에 들어갈 내용에 이견이 있음을 시사했다.

힐 차관보의 이 같은 언급은 결국 북한이 힐에게 UEP 추진 사실을 시인하거나 신고 목록에 UEP 관련 내용을 넣겠다는 명시적인 언질은 하지 않았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한 외교 소식통도 “이번 협의에서 북한이 당장 UEP의 존재를 시인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신고의 시한인 연말까지 전개되는 상황을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달 초.중순께 6자 수석대표 회담을 개최, 북핵 신고를 평가하고 최종 핵폐기 단계에 대한 초보적 논의를 하려던 6자의 계획에는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7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인 힐 차관보도 이날 6자 수석대표 회담이 내년 초로 미뤄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미국 측은 신고 목록에 UEP 관련 사항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연말까지 북핵 신고가 마무리될지도 지켜봐야 한다는게 외교가의 전반적인 관측이다.

북한이 연말까지 신고서를 낼 수는 있지만 UEP 의혹과 시리아 등 해외로의 핵이전 의혹 등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이 담긴 신고서가 연말까지 나올 지는 예단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북한의 신고.불능화 이행에 맞춰 미국이 이행키로 한 대북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대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에 대한 전망 역시 안개 속에 빠진 양상이다.

결국 연내 신고.불능화 완료와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 등을 담은 10.3 합의는 시한 내에 마무리되기 어렵게 됐다는 시각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연내 개최 가능성이 거론되던 6자 외교장관 회담과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개시 또한 덩달아 순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핵 신고 문제의 복잡성으로 미뤄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해결 이후 6자회담이 처음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됐다는 관측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UEP 의혹을 제기하며 제네바합의를 무력화한 이들을 비롯. 북핵 해결을 위한 북.미의 ‘밀월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던 미국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외교 소식통들은 아직 비관적 전망을 내 놓기는 이르다고 전망했다. 북.미가 UEP 등 문제에 대해 추가 협의를 통해 해법을 마련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한 소식통은 “북핵 신고 문제를 돌파하지 못할 경우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통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취할 수 없고 남북간에 진행되고 있는 각종 경협 프로젝트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점을 북이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힐 차관보가 북한까지 갔음에도 당장 가시적 성과물을 내 놓지 못한데 대해 미국 일각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올 수는 있지만 북한이 신고 문제로 인해 판을 깨는 상황은 바라지 않을 것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해법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