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바람 ‘불어 닥친’ 북한

“북한에 ‘변화의 바람’이 분 지는 꽤 됐습니다. 변화의 바람이 이미 ‘불어 닥쳐’ 과거 ‘통제사회’의 곳곳에 파급 효과를 내는 모습이 이제서야 서서히 드러나고 있을 따름입니다”.

수 년간 평양을 비롯한 북한 주요 도시를 왕래하며 사업을 벌여왔다는 국내의 한 기업가는 3일 평양 방문 중 기자에게 ‘북한의 변화상’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달 27일 개성에 이어 30일부터 지난 3일까지 평양 시내와 근교, 평안북도 향산 지역 등을 돌아본 기자의 ‘변화의 바람이 부는 느낌’ 소감에 대해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친 것으로 봐야한다”고 수정해주면서 “이는 북한이 (2002년의)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고 있는 반증”으로 풀이했다.

이렇듯 당창건 60돌(10.10)을 목전에 둔 평양 시내의 거리는 건물 옥상 등 도처에 ‘강계 정신’ 등 각종 구호나 그림 등이 걸려 있는 등 기존의 모습 그대로인 듯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평양에서 시작된 변화의 바람은 남북으로 개성과 함흥까지도 사정권에 둬 점진적인 사회변동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최근 평양을 방문했던 국내외 기업가나 NGO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 주민들의 변화된 모습 = 3일 오전 량각도 국제호텔에서 체크 아웃을 하려고 방문을 나서자 40∼50m 떨어진 복도 끝에서 작업하던 객실 청소담당자와 지도원이 엘리베이터 앞에까지 달려와 “안녕히 가십시오. 다음에 또 저희 호텔을 찾아주십시오”라며 깍듯이 인사를 했다.

개성이나 평양, 향산 등 남,중,북부 주민들 모두 해맑은 얼굴로 남측 인사들에게 반가워하며 손을 흔드는 모습도 얼마 전까지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1일 평양시내 만수산 의사당과 김일성 주석 동상에 참배를 온 일반 주민이나 학생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밝은 모습으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더 이상 남측 사람들의 질문에 모르는 체하거나 당황해하는 기색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남조선’ 사람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예전의 모습도 없어진 듯했다.

모란봉 공원 등 유원지에서 관측되는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장면이나 주위 사람들을 인식하지 않는 자연스런 표정 등도 눈에 띄었고, 당국 역시 남측 여행객들의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어느 정도 허용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과거엔 일반 주민이나 허름한 아파트 등 자신들의 주거지 등에 대한 사진 촬영을 엄격 제한했으나 이번에는 군인이나 남측의 쌀 공급 및 배포장소 등 일부에 대해서만 통제할 뿐 웬만한 부분에 대해서는 제한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 샤시 장착하는 평양의 아파트들 = ‘평양의 거리는 전광판의 거리’.

또 주목되는 부분은 평양시내 아파트 대부분이 비닐로 창문을 덮었던 예년과 달리 알루미늄 샤시나 유리창 장착, 또 도색 작업 등이 한창인 점이다.

동대원구, 락랑구, 선교구 등 주요 지역 아파트들의 ‘고비용 월동준비’는 개성에서는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는 적어도 평양의 경우 주민들이 수입이 조금은 더 늘어났고 북한의 에너지 사정도 좋아졌음을 보여주는 반증인 것 같다.

전문가들은 유리창 생산에 전력 사용이 아주 많이 소요되는 점을 들어 북한의 전력 등 에너지 사정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2일 밤 11시 량각도 호텔에서 바라본 대동강 동편의 동평양의 야경은 한국의 지방도시들의 야경 못지 않을 정도로 대부분 아파트들에 불이 켜 있는가 하면, 호텔의 엘리베이터 8대 모두 24시간 정상 가동되고 있었다.

인민문화궁전 인근 건물 옥상에는 대형 LED 전광판이 자리잡고 있다. 대북 경협에 밝은 한 인사는 “(민경련 산하) 삼천리 총회사의 이귀완 총사장이 과장으로서 LED 사업을 맡아하다가 연이어 초특급 승진으로 총사장으로 발탁할 정도로 북한 기업들의 LED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평양 시내 아파트들이 초록과 연두색 등으로 도색돼 있거나 도색 등 미관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도 시멘트 벽돌이 휑하니 드러나 있는 개성의 아파트들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평양시내 거리의 또 다른 달라진 모습은 도처에 청량음료 광고판이나 식료품 등의 매대들이 크게 늘어난 점이다.

평양을 자주 왕래하는 (주)프레스코의 조봉현 부사장(경제학박사)은 평양의 변화 배경으로 “7.1조치 이후 나름대로 경제적인 여유를 찾은 것”으로 설명했다.

그는 “북 당국은 남측의 아리랑 축전 관람객 감소에 우려하기도 했지만 결국 남측 인사들에게 평양 관광과 아리랑 공연 관람을 허용한 것은 외화벌이 목적외에 체제유지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때문”으로 풀이했다.

◇ 상황 변화에 맞게 조직 개편 = 북한은 그동안 민간 위주의 경제협력을 주로 강조해왔으나 이번 방북 기간에 고위 인사들이 정부가 기업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야한다고 역설하는 등 민간사업에 정부의 역할이나 개입 필요성을 수 차례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김춘근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부회장은 1일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 창업식을 마친 뒤 남측 기업인 및 은행 관계자 등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상권 산업은행 이사에 대해 “안동대마방직에 한 10억원쯤 대출을 해달라”면서 “정부가 민간기업들의 활동을 적극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이처럼 ‘정부와 민간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인식의 변화가 6월22일 발표한 민경련을 민경협(민족경제협력위원회)으로 확대 개편해 그 산하기구로 둔 조직 개편의 배경으로 보고 있다

북측은 남측과의 경협이 활성화되고 규모로 확대되는 것에 발맞춰 사업 조직을 확대하고 인원도 보강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남한과의 경협을 본격적으로 착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등 경협 본격화를 위한 준비단계로도 보인다.

이렇듯 북한의 변화의 모습은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비료 지원 등의 영향으로 작황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 1990년대 중반 이후 수 년간 지속된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아 온 북녘땅 곳곳이 황금물결을 이루는 대풍년을 예고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훈풍은 평양에서 향산으로 가는 길목의 농부들의 즐거운 표정에서도, 작황을 묻는 남측 인사들에게 “대풍입니다”며 환하게 웃는 김춘근 민경련 부회장 등 북측 관리들의 얼굴에서도, 또 손님 유치에 적극적인 호텔 직원들의 친절한 말투에서도 잔잔하게 느껴졌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