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의 예정된 추락…김정일과 고리 끊어야 산다

민주노동당이 분당하였다. 민주노동당 안에는 이제 ‘김정일 추종세력’만 남게 되었다. ‘자주파’로 명명되는 그들은 과거 NL(민족해방) 세력이다.

80년대로 거슬러 가보면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은 민노당 분당의 한 축인 ‘평등파’ 즉 PD(민중민주) 세력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가령 87년 PD 노선의 본류 세력은 ‘독자적 민중후보’로 대선에 임한 반면, NL 세력들은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김영삼을 중심으로 한 당선 가능한 야당후보 지지’로 갈렸다.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PD 세력들은 변함없이 독자적인 민중후보 노선을 견지하였으며 NL 세력은 ‘민주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김대중을 지지하였다.

NL 세력이 진보정당운동 혹은 운동 세력의 현실 정치 세력화에 특히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로 볼 수 있다. 95년도 필자가 후보로 출마한 대학 학생회 선거에서도 이 문제는 NL-PD 간의 뜨거운 논쟁으로 번졌으며, 서로를 분명히 차별화하는 핵심적 공약 사항이 되었다. NL 진영은 이른바 ‘현대적 국민정당’이라는 모토를 내세웠는데, 기존의 진보정당운동을 비판하며 ‘대중’에 기반한 진보세력의 독자적 국민정당 건설을 주창하였다. ‘민중’ 진영에 기반한 독자적 진보정당을 표방한 PD 운동 세력과 그 색깔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현대적 국민정당 노선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으며 당시 NL의 입장에서 학생운동에 임했던 필자는 선거에서 승리했다.

96년 연대 사태의 광풍으로 필자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1997년, NL과 PD는 그 간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된 진보정당운동으로서 ‘국민승리21’을 탄생시켜 대선에 뛰어 들었다.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모태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필자는 감옥 안에서 ‘국민승리21’을 지지하였으며 대선 성공을 기원하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필자는 감옥을 나온 후 90년대 중후반 북한의 대아사 사태와 속출한 탈북자들의 증언 속에서 북한에 대한 입장 정리에 합류하게 되었고 북한민주화운동에 뛰어들기에 이르렀다. 90년대 함께 운동을 했던 소중한 동지들과의 논쟁은 북한 문제에 이르러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NL 운동의 동지들은 필자를 비난하며 민노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노당이 10년 만에 다시 갈라서게 된 오늘의 분당 사태는 국민들이 알고 있듯이 그들의 ‘종북주의’ 때문이다. 즉 ‘김정일과의 고리’이다. 필자는 밖이 아니라 기왕에 민노당 안에서 표출된 종북주의 논쟁을 과거 NL 세력이 겸허히 수용해 변화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너무나 잘 아는 필자의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놀라운 교조주의와 전횡으로 민노당의 개혁을 가로막았다.

자주파가 김정일과의 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민주노동당의 추락은 예정된 것이었다. 평등파가 이들(NL)의 종북주의 노선이 진보운동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자주파와 손을 잡은 것은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대의와 함께 특히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변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주파의 종북주의는 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강화되어 갔다. 그들은 진보운동의 정도(正道)와 ‘인민’을 좇기보다 김정일만을 바라보고 독재자를 옹위하는 잘못된 노선으로, 도덕성의 추락과 상실은 물론 진보세력으로서의 전반적 혁신마저 완강히 거부하는 ‘퇴물’로 전락해버렸다. 바늘이 멈춘 ‘고장난 나침반’이 되어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요구를 철저히 묵살한 것이다.

분당파들은 “낡은 과거의 틀에 안주하면 진보진영에 미래는 없다”며 “1987년 이전 운동권의 인식과 경험, 실천방법을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민노당을 탈당해 ‘진보신당’을 발족하는 동안 민주노동당의 잔류파들은 “지난 4년의 공(功)이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국민께 얼굴을 들 수 없으며 석고대죄한다”는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분당파들을 비난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참말로 무엇을 사과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석고대죄해야 할 것은 진정 다른 데 있다. 그들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 이유를 피해가서는 진정 반성이라 할 수 없다. 종북주의로 물든 자신들의 오류를 반성하지 않고서 무엇을 석고대죄한단 말인가.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반성을 뻔뻔스레 거론하기 전에 북한 인민에게 속죄해야 한다. 그들이 비호한 김정일이 얼마나 많은 인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깨닫고 그들의 ‘연대 책임’을 반성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석고대죄’란 의미가 없으며 한낱 ‘쇼’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는 지난 10년은 물론 오늘 이 순간에도 지난날의 동지들이 잘못된 길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이 잘못된 ‘주의’를 아직도 신주단지처럼 신봉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에 대해 가지는 그들의 진정한 마음을 필자는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변함없이 김정일 정권을 비호해 나선다면, 그 변화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씻을 수 없는 역사의 죄인으로 밖에 남지 않을 것임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날 필자의 동지들은 ‘사람’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주장과 행동이 어떤 한계와 부정성을 가졌더라도 그들 속에 깃들었던 그 마음마저 달라질 순 없으며 그것을 필자는 잘 안다. 정의로운 세상,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이상과 꿈, 그것을 위한 우리의 운동은 사람에 대한 사랑, 고통받는 인민을 위해 헌신코자 결심한, 오로지 거기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용서할 수 없는 독재자에 대한 옹호와 추종으로 둔갑하고 고착될 수 있는가! 어쩌다 그들은, 자신의 알량한 권력 연장을 위해 인구의 10분의 1을 굶겨 죽이고, 굶어죽게 방치하고, 공개처형하고 수용소에 가두고 억압하고 탄압하는, 상상할 수 있는 만행의 독재자에 눈 감고 귀 막으며 심지어 그를 지키고자 몸부림치고 있단 말인가!

지난날의 오류는 지난날의 조건 속에서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는 미룰 수 없다. 독재자를 옹위하며 독재자를 따르는 운동은 진보가 될 수 없다. 불의와 야만이며 시대의 절망이자 역사의 반동이다. 그것은 우리의 초심과 정반대에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우리가 온 몸을 바쳐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던 바로 그 자리에 놓였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김정일 독재자와의 질긴 고리를 분연히 끊음으로써 진정 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조금이나마 역사의 죄를 사함받아야 한다. 진보의 정도를 원하며 사람을 향한 초심을 변함없이 간직한 참된 당원들이 민주노동당 안에 있다면 진정 그들이 그것을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고민하고 고뇌하는 참된 당원들에게 부디 필자의 고언을 흘려듣지 말아 주길 간절히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