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핵 `분리검증안’ 의견접근한 듯

북핵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북.미가 그동안 첨예하게 맞서왔던 핵 검증체계 구축에 대해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중단에 이은 핵시설 복구 움직임, 재처리시설 재가동 통보 등으로 한껏 높아지던 위기감도 다소 누그러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북한이 이르면 1일 단행하겠다고 밝혔던 재처리시설 재가동도 아직 실행에 옮겨졌다는 징후도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는 2박3일 간의 평양방문을 마치고 3일 서울로 돌아와 기자들과 만나 “실질적이며 길고 구체적인 논의를 했다”고 말하면서도 본국 보고와 중국, 러시아 등 다른 참가국들과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않았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 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협의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10월에 6자회담 차원의 협의가 있어야겠고 하리라는 얘기를 했다”고 말해 협의에 일정한 진전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힐 차관보는 이번 방북에서 정식 신고서에 담긴 영변 핵시설을 먼저 검증한 뒤 북.미 간 비공개의사록에 담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및 핵확산 문제는 추후 검증한다는 내용의 ‘분리 검증안’을 북한에 제안해 어느 정도 호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미국이 주장해 온 ‘샘플채취’와 ‘미신고시설 방문’ 등 두 가지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는데, 힐 차관보가 이번에 건넨 방안은 양측이 한걸음씩 물러나 북한이 ‘샘플채취’를 받아들이는 대신 미국은 ‘미신고시설 방문’에 대해서는 당장은 고집하지 않겠다는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북.미는 과거 핵프로그램 신고서 협의에서도 UEP와 핵확산 문제 등에서 첨예하게 맞서 해법을 찾기가 어려워 보였지만 이 문제를 플루토늄과 분리, ‘비공개의사록’에 담기로 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이견이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특히 미신고시설 중에서도 플루토늄 검증에 필수적인 고준위폐기물 저장소 등은 1차 검증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북한은 이를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힐 차관보가 북한 군부 인사를 만난 점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을 끈다.

그는 이번 방북에서 북한군 판문점대표부의 리찬복 대표를 만났다. 이번이 3번째 방북인 힐 차관보가 북한 군부 인사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외교 소식통은 “핵문제에 있어 실권은 북한 군부가 쥐고 있다”면서 “힐 차관보가 군부 인사를 직접 만나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한.미 수석대표가 동시에 고위층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내비쳐 배경이 관심을 끌고 있다.

김 숙 본부장은 “한.미간 외교장관 또는 그 이상인 정상간 협의도 필요하다면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고 힐 차관보도 “외교장관들이 계속 연락을 주고 받을 것이며 그들이 어떻게 하는 지를 지켜보자”고 말했다.

이번 북.미 평양협의에서 6자 수석대표 차원은 넘어 장관급 또는 정상 간의 협의가 필요할만큼 중대한 변수가 생긴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게하는 대목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