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 탈북자, 보호장치 미비로 고통받아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교 출신 탈북자들이 험난한 과정을 거쳐 국내로 입국했으나 ‘무국적’ 탈북자에 대한 현행 법률과 제도의 미비로 인해 보호와 정착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무국적 탈북자’ 문제가 이어지면서 관련 단체는 지난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출, 관련 법.제도를 정비토록 국가정보원, 법무부, 국회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권고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진척이 없다.

북한에서 중국 국적의 아버지와 북한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뒤 북한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채 ‘외국인 등록증’을 갖고 살다 탈북해 국내로 들어왔을 때 이들은 현행 법상 ‘탈북자’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은 “북한이탈주민이란 북한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자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윤 현)에 따르면 북한에서 태어나 수십년을 살다 탈북한 뒤 국내로 입국한 화교 출신 탈북자는 수명 수준.

이 가운데 김성한(가명)씨는 평양에서 모셔온 어머니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덕분에 귀화요건이 충족돼 뒤늦게 한국 국적으로 정착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4년 입국한 김천일씨는 아버지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채 3개월마다 ‘중국 국적을 회복한 후 출국하라’는 전제 아래 법무부로부터 체류기간 연장을 받고 있다.

또 지난해 국내로 들어온 진국량.강옥련씨 부부 역시 할아버지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탈북자 대우를 받지 못한 채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돼 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해 중국 정부가 중국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김천일씨는 중국인으로 분류돼 강제 추방됐으나 중국 정부가 “중국인으로 볼 수 없다”며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바람에 ‘무국적’ 탈북자로 전락했다.

그는 법무부 산하 외국인보호소에 8개월간 수용돼 있다가 출소했으나 취업제한 규정 때문에 일자리도 얻지 못한 채 시민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근근이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보호소에 수감된 진씨 부부도 탈북자나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강제출국 조치가 있을 경우 중국으로 추방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지난해 8월 “탈북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무국적자로 전락할 수 있는 사람들을 법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출했으나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고 이 단체의 이영환 팀장은 말했다.

그는 28일 “다른 업무 처리 때문에 진정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는 인권위의 지연처리 통보도 규정보다 2개월 초과한 올해 1월 하순 받았다”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이 단체가 인권위에 진정한 제도개선 및 권고 방향은 크게 2가지.

현행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의 탈북자 정의 단서 조항에 ‘북한 국적을 상실하고 법적으로 제3국 국민으로서 지위를 획득하지 않은 경우 한국 국적을 부여할 수 있다’는 규정을 추가하거나, 화교 출신 탈북자도 법무부의 난민지위심사 절차에 따라 한국국적 획득 여부를 심사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환 팀장은 국적을 실질적으로 취득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 태어나 살던 나라를 그 사람의 국적으로 본다는 ‘난민지위협약’을 지적, “화교 출신 탈북자들이 북한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더라도 중국 국적 도 실질적으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북한 국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이 문제는 중요하고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면서 “단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