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선 北’봉수호’ 험난한 여정 마침표

▲호주 시드니 항에 계류되어 있는 북한 봉수호 ⓒ로이터

지난 2003년 4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스릴 넘치는 장면이 9시 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바로 4천톤급의 커다란 배에 ‘봉수호’라는 한글명이 선명하게 박힌 배 한척이 헬기와 군함까지 동원한 호주 해군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나포되는 장면이 전세계로 전파를 탄 것.

국제 무기밀매를 소재로 한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전쟁의 제왕'(Lord of War)에서 커다란 화물선에 무기를 가득 싣고 운반하던 케이지가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배의 이름까지 급하게 교체하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이었을까?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로 결연히 싸울 것”

이들은 추격전을 벌이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봉수호 선원들에게 ‘나포를 피하라’는 북한관리의 무선 지시에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로서 결연히 싸울 결의로 가득 차 있다’고 응답하는 교신 내용이 호주 경찰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03년 4월 16일 밤, 빅토리아주 론 근처에 정박한 봉수호에서 해상 운반조 2명이 헤로인 150kg을 고무보트에 옮겨 싣고 해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3명의 육상 운반조와 만나기 위해 접근하다 거센 풍랑에 보트가 전복됐다. 이로인해 당시 1명이 익사하고 헤로인 25kg을 분실했다.

호주 연방경찰과 해군 당국은 당시 해안에 숨겨놓은 헤로인 125kg을 발견하고 육상조 3명과 해안 운반조 1명을 체포했다. 호주 해군의 추적을 피해 쉴새 없이 달아나던 봉수호는 4일 동안 도피 끝에 뉴캐슬항에서 35해리 떨어진 해상에서 발견됐다. 호주 연방경찰은 수 차례에 걸쳐 정지명령을 내렸으나 이를 거부하자 호주 경찰당국은 헬기 등을 동원, 결국 나포했다

나포 당시 봉수호에 북한관리를 포함한 선원 30명이 타고 있었지만 이들 중 26명은 2004년 6월 북한으로 송환됐고, 선장 송만선(65), 정치보위부원 최동성(61), 1급 항해사 리만진(51), 기관장 리주천(51) 등 선원 4명은 마약밀매 혐의로 그동안 호주당국으로 부터 조사를 받아왔다.

마약 운반 외국인 4명 중 2명은 이미 중형선고

이와 관련, 함께 붙잡힌 아시아인 4명은 마약밀수 방조 혐의로 기소돼 북한선원 4명에 대한 배심재판이 시작되기 전인 작년 8월에 이미 유죄를 시인하고 이들 중 2명이 23년, 22년형을 중형을 각각 선고 받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북한선원 배심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가 금지됐다 5일 배심재판이 종료되면서 처음 공개됐다.

호주 검찰측은 이 사건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정교한 국제마약밀매사업으로, 봉수호가 나포 당시 대형 짐칸 2개가 비어 있었고 호주 수역에 와 있을 합당한 목적이 전혀 없었다”며 “헤로인 밀수의 목적으로 호주에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인 변호인들은 “피고인들이 배 안에 헤로인이 실려 있었다는 것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며 검찰측 주장이 증거가 부족하고 추측에 근거하고 있다”고 반론을 펴 배심원들에게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죄평결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마약을 해안으로 옮긴 혐의로 기소된 외국인(중국인)에게는 봉수호 선원 재판 이전에 이미 마약밀수 방조 혐의에 유죄를 인정하고 중형을 내린 것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마약 운반한 봉수호는 법에 따라 해체될 것”

이와 함께 시드니 항에 계류되어 있는 전장 106m의 봉수호는 곧 해체될 것으로 보인다. 믹 킬티 연방경찰청장은 6일 “통상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선박이 세관법에 따라 처리된다”며 “봉수호는 호주에 헤로인을 반입하는 데 사용된 선박임이 법정에서 입증된 만큼 같은 상황의 다른 선박과 마찬가지로 파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지난해 발표한 연례 국제마약통제전략보고서에서 “북한과 연계된 헤로인과 히로뽕이 동아시아 국가로 밀매되는 데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북한의 정부관리나 기업이 마약거래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지난 수십년간 북한인이 마약밀매, 위조지폐 거래 등 범죄행위와 관련해 체포됐고 많은 경우 이들은 군사용 순찰정 등 국가 자산을 이용했다”며 “북한 정부가 국가와 지도자들을 위한 외화벌이를 위해 그런 불법행위를 후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영천 기자 dailynk@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