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대북 양보’ 발언 배경과 의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9일 북한에 대해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는 언급과 함께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해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 대통령의 언급이 시기적으로 내달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방북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예정돼 있고, 북·미간 대립으로 북핵 6자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미묘한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노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의 불신 해소를 위한 ’원칙있는 양보’에 일관되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정상회담의 경우도 북핵 문제와의 연계라는 ’조건’도 없어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앞둔 대북 메시지의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울란바토르 동포간담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잘 설득해 한국에서 기차에 자동차를 실으면 북한을 거쳐 울란바토르, 유럽으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

답변 머리말에서 김 전대통령의 내달 방북 사실을 상기시킨 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이 길을 잘 열어주면 저도 슬그머니 할 수도 있고…”라며 DJ 방북에 강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이어갔다.

“저는 북한에 대해 완전히 열어놓고 있다”고 전제한 뒤 “’언제 어디서 무슨 내용을 얘기해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해 보자’고 수십번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물론 정상회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이 같은 표현 자체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제에 관계없이 정상회담에 응할 용의가 있다”(2005년 1월13일 신년 기자회견) “정상회담에 관해 언제나 그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고,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다”(2005년 11월17일, 한미정상회담후 공동기자회견) 등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해왔다.

노 대통령의 이날 어법도 “…만나서 얘기해보자”라는 현재형 제안이 아니라 “…’만나서 얘기해보자’고 수십번 얘기했다”며 과거 발언을 재확인하는 형식이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2차 남북정상회담을 직설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청와대 고위 당국자도 “정상차원의 만남 제안은 과거에도 해왔고, 언제 어디든 만나겠다는 것은 전에도 해왔다”며 “전에 없던 것을 새롭게 얘기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표현의 발언이라도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전제’를 붙이지 않은 점이 과거 발언과는 확연히 다른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정상회담의 ’때’(when), ’장소’(where), ’의제’(what) 불문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정상회담은 북핵문제를 풀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데 전략적으로 유효하지 않으면 좋은 것만은 아니다”(2005년 7월7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간 간담회), “북핵 6자회담 틀속에서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팽팽한 협상이 이뤄지는 동안에는 정상회담이 큰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2004년 12월2일, 한·영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는 식의 ‘조건’을 사실상 전제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상회담은 상대방이 있는 문제”라며 북측 태도를 선결요건으로 거론하기보다는, 오히려 북한을 위한 ’양보’를 강조했다.

정상회담에 대한 노 대통령의 기조가 변화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유추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해석은 최근 북한 위폐 문제와 이에 따른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로 인한 북핵 6자회담 교착상태가 장기화되고 있고, 미국이 탈북자 6명의 망명을 받아들이는 등 북미간 갈등이 북한 인권 문제까지 확산되고 있는 상황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처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각국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정세 변화’속에서나온 노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가 김 전대통령의 방북을 매개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교착 국면을 주도적으로 타개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과 연결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김 전 대통령과 만나면 북한도 가볍게 융통성있는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당히 기대를 갖고 있다”며 내달 DJ 방북의 성과에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DJ 방북에서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담은 6.15 공동선언의 이행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발언은 김 위원장을 향한 메시지로 풀이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대북 ’양보’의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조건없이 하려고 한다”고 적시한 점은 DJ 방북 성공을 위한 분위기를 띄우는데 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이미 발표한 ’대북 중대제안’인 북핵 해결시 대북 200만 KW 직접송전 방안외에 별도의 후속 대북 지원대책을 강구중인지 여부도 관심 대상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이날 “북한이 개성공단을 열었다는 것은 남침로를 완전히 포기한 것이고, 금강산도 서로 싸움하면 대단히 중요한 통로인데 그런 것을 열었다”며 ’북한의 결단과 변화’를 부각시키며 “우리도 조금 믿음을 내보일 때가 됐다”고 말한 것은 대북 강경기조로 선회하고 있는 미국 정부내 기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없지 않다./울란바토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