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언론에 희망 거는 북한주민

▲ DailyNK의 ‘강영세 비리사건’ 보도

지난 8월 26일 신의주에 살고 있는 북한주민이 DailyNK 편집국으로 걸어온 한 통의 전화는 분단 50여년사에 기록될 하나의 ‘사건’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김가’라고만 밝힌 주민은 중국의 기지국을 통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와 “신의주의 악덕 기업주 강모의 비리를 꼭 남조선 언론에 내달라”고 신신당부했다(DailyNK 8월 30일, 동아일보 31일 보도). 분명히 북한주민의 ‘제보전화’였다.

분단 이후 남북간의 전화접촉은 많았다. 정부간 연락은 물론이었고, 지금은 남한에 와있는 탈북자들이 북에 두고 온 가족과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일까지 비일비재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익명의 북한 주민이 남한언론에 전화를 걸어와 북한 내부의 사건을 ‘제보’하는 경우는 분단 후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 주민은 어떻게 해서 남한언론에 제보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을까?

북한 매체에 진실은 없다

그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북한에는 ‘언론’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언론이 없고 ‘매체’가 있다. 정확하게는 ‘선전매체들’이 있다. 왜 언론이 아니고 매체인가.

언론은 ▲사실보도 ▲사회감시 ▲여론형성이라는 목적을 갖는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언론이다. 북한의 매체는 이러한 목적이 없다. 북한의 매체는 ‘수단’이다. 어떤 수단인가. 수령과 당의 목적에 복무하는 수단이다.

공산권 사회의 모든 매체는 사회주의-공산주의사회 건설에서 당의 노선을 관철시키는 중요 수단이다. 따라서 당의 권위와 영도를 훼손하는 기사나 논평이 실릴 수 없다. 사실보도, 사회감시, 대중의 여론형성이라는 기능 자체가 없는 것이다.

구소련 체제를 끌고 간 중요매체는 <프라우다>와 <이즈베스티야>였다. 프라우다는 당기관지, 이즈베스티야는 우리로 치면 국회가 발행하는 기관지다.

프라우다는 러시아 말로 ‘사실’이라는 뜻이다. 이즈베스티야는 ‘소식’ 즉 뉴스다. 구소련 사회를 비꼬는 유명한 농담이 있었다. “프라우다에는 사실이 없고, 이즈베스티야에는 뉴스가 없다.”

당의 노선을 무조건 충실히 관철하는 기능만 가졌기 때문에 사실보도, 진실보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도 중국의 인민일보는 중국공산당에 불리한 사건사고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북한의 매체는 노동신문(당), 민주조선(내각), 청년전위(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구 사로청) 등이 있다. 이 매체들은 처음에는 구소련처럼 당의 영도를 선전했다.

그러나 60년대 말부터 북한이 유일체제로 변질되자 오로지 김일성 수령의 영도를 선전하는 매체로 전락했다가, 80년대 이후에는 김일성-김정일의 앵무새 역할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일부 한국언론에서 아무 생각없이 쓰는 ‘북한언론’이라는 표기는 잘못된 것이다. 이같은 표현은 ‘북한에도 언론이 있구나’ 하는 오해를 줄 수 있다. ‘관영매체’로 쓰던가, ‘선전매체’로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

주민들 외부언론 활용 눈떠

이같은 상황에서 주민들이 김정일 정권에 불리한 사건사고를 관영매체에 제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북한에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한 휴대폰은 북한주민과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 북한의 국경지역이 중국의 기지국을 통해 외부와 통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신의주 주민 제보사건도 이같은 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신의주 주민은 당과 권력기관에서 남한언론을 본다는 사실을 머리에 떠올렸을 수 있다. 남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당 통일전선부는 물론, 보위부 등 주요 권력기관이 매일 점검한다. 이들이 DailyNK도 매일 체크하고 있다는 사실은 복수의 통로로 확인되고 있다.

신의주 주민은 이를 십분 활용하여 남한언론에 제보하면 강모의 비리사건을 북한에도 알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신의주 강모 비리사건이 남한언론에 보도된 이상, 강모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북한에서, 특히 보위부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다.

강모가 보위부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잘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일은 북한주민들이 한국을 비롯한 외부세계를 알게 되면서 외부언론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의 제보를 기다린다

신의주 제보사건 이후 DailyNK가 주목하는 것은 제보자의 신변안전이다. 만약 김정일 정권이 제보자를 색출하라는 지시를 내리거나 색출작업에 들어갈 경우, 그러한 사실도 DailyNK는 계속 보도할 것이다.

아울러 이 기회에 신의주 주민을 비롯한 모든 북한주민에게 당부드린다.

DailyNK는 2천3백만 북한주민들을 대변하는 진정한 ‘북한언론’인 만큼, 김정일 정권과 독재기관들의 비리, 그리고 주민들의 이익에 위배되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빠짐없이 제보해 달라는 부탁을 드린다.

주민들의 작은 제보가 김정일 독재정권을 교체하고 북한의 개혁개방과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당부 드린다.

※ 제보전화 : 82-2-732-6998(6999)

손광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