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訪中 독해법… ‘우리 北中끼리’와 대미전략

최근 김정일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언론에 ‘동북아 정세가 복잡해졌다’는 분석기사와 논설이 많이 등장했다. 늘 그렇긴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말이 잘 되는 소리, 잘 안 되는 소리가 섞여 있는 것 같다. 


이 기사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라는 생각도 든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한 국가의 발전수준은 그 나라의 정치수준-언론수준-국민수준이 엇비슷하게 가는데, 정치수준이 낮은데도 언론수준만 확실히 높아지기를 바라는 것도 주관적 희망사항 내지 욕심일 뿐이다. 모든 분야에서 수준이 더 높아져야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다. 앞으로 어느 임의의 시각에 북한문제를 놓고 우리가 총체적인 역사적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 닥칠 경우, 그 앞길을 비쳐줄 ‘등대’ 역할을 해줄 현실에서의 당사자들은 역시 정치인들과 언론일텐데, 어차피 여의도 국회의원들이야 그중 몇명을 빼면 거의 분리수거 대상들이라 더 할말도 없지만, 그래도 언론만큼은 적어도 지금보다 수준이 더 높아져야 우리 앞에 닥칠 큰 문제들을 풀어가는 등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이 그런데도, 예를 들어 어느 유력일간지의 국제문제 大기자라는 분이 쓴 분석기사를 보면 진짜로 대기자인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나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그 대기자라는 분 개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생각도 없고 그럴 계제도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서 각계각층의 주요 직책에 있는 인물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라는 것이 있는데, 그 주요 인물들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 국민들은 대한민국 공동체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런 가장 대표적인 주요인물은 역시 대통령이다. 그리고 입법· 사법·행정 분야, 언론 학계 종교 분야의 주요인사들이 각자 제 위치에서 자신의 사회적 역할들을  충분히 해주어야 국민들도 대한민국 공동체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같은 정치지도자가 압도적으로 중요하고, 또 여러 지도적 분야에 있는 사람들도 사회적으로 객관화되어 있는 자기 직책에 대해 늘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윗물이 맑아야…’라는 표현을 잘 쓰지도 않고, 또 윗물· 아랫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좀 흐트러진데다, 사람들이 ‘부디 윗물이 맑아주기를’ 이젠 별로 기대하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에, 그 ‘윗물들’이 자신이 윗물인지 아랫물인지 객관적으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지만,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왜 자기자신을 ‘대통령이 아니기를 바라는 대통령’으로  사고하고 행동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을 ‘대한민국의 최고 윗물’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필자는 아마도 노대통령은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 윗물’이라는 사실을 내면적으로 거부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민중적이며 소탈한 성품’이라고 착각했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의 메우기 어려운 괴리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자신을 많이 괴롭혔을 것으로 짐작한다.      


사실, ‘윗물 · 아랫물’의 의미는 사회적 지위의 고하에서 찾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전(前)세대와 후(後)세대 간의 관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다시 말해, 전세대는 소중한 가치들을 창조하고 잘 가꾸어서 후세대에게 물려주고, 후세대는 그 가치들을 재창조해서 더 큰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면서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듯이, ‘윗물 ·아랫물’의 의미도 그렇게 생각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사랑과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선순환적 고리를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책임을 따지자면 ‘윗물’에게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윗물들은 스스로를 진정으로 윗물로 생각하면서 좀 독하게 자중자애(自重自愛)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쓸데없는 잡설이 길어졌는데, 언론에서 ‘동북아 정세가 복잡해졌다’고 하는데, 정말로 정세가 복잡해져서 복잡한 것인지, 아니면 정확하고 핵심적인 사태 파악이 어려우니까 ‘복잡해 보일 뿐인지’, 한번 따져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최근 동북아 정세에 변화가 시작된 계기는 김정일이 열차를 타고 중국 동북 3성지방에 가서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것이다. 이것이 사건의 본체(本體)다. 그외에 언론에서 고려 대상이 된 몇 가지 요소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김정일이 카터 전 미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해놓고 왜 만나주지도 않고 갑자기 중국에 갔느냐? *지난 5월에 북중 정상회담을 해놓고 왜 3개월 만에 또 갔느냐? *9월 상순 당대표자회를 앞두고 김정은을 데리고 중국 지도부에 3대세습을 용인받으려고 간 게 아니냐? *신의주-심양-베이징으로 가지 않고 김일성 유적지를 찾아 동북 3성으로 간 것은 3대 세습과 관련된 것 아니냐? *김일성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3대세습을 정당화 하려는 국내정치 행보 아니냐? *후진타오-김정일이 6자회담을 재개하자고 했고, 또 북한은 중국의 도움을 받아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것 아니냐? *앞으로 미중관계, 중북관계,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오는 게 아니냐?              


이상이 우리 언론에 보도된 주요 내용이다. 특히 방중 첫날부터 ‘김정일이 중국 지도부로부터 3대세습을 용인받으려는 목적’이라는 기사가 쏟아졌고, 김정은의 동행 여부가 큰 관심거리였다. 물론 언론이 충분이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김정일의 비공식 중국방문’이라는 사건을 놓고, ‘본질과 핵심’-‘현상과 주변’으로 갈라서 보자면, 김정일의 김일성 유적지 방문과 김정은 동행문제 같은 것은 본질과 핵심에 해당하기 어렵다.


김정일의 김일성 유적지 방문은 어디까지나 ‘중국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따라서 김정일의 그런 행보는 북한내부를 겨냥했다기 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찾아보는 것이 먼저다. 또 그 행보는 김정일이 3대세습에 방점을 두려는 게 아니라 중국 지도부에게 ‘북-중 특수혈맹관계’를 계속 강조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김정일이 ‘동북 3성은 과거 김일성과 모택동의 중국 공산당이 피를 나누면서 일제에 맞서 함께 싸운 혈맹의 성지’라는 메시지를 계속 중국 지도부에 보내면서, “당신네들이 요즘 북중관계를 자꾸 국가대 국가관계로 가려고 하는데, 북중관계는 어디까지나 혈맹 동지관계야!”라고 강조하고, 특히 “동북 3성 지역은 북한지역의 연장(延長)으로 볼 수 있으니, 우리가 잘못되면 동북 3성도 잘못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를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많이 도와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김정일은 그런 행보를 통해 중국 지도부에 중국과 인접한 다른 이웃나라가 아닌 ‘중국과 북한만의 특수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이것이 김정일의 동북 3성 행보의 핵심과 본질이다.  


김정일의 “조-중 친선의 바통을 후대에게 잘 넘겨주고…” 하는 발언도 김정은 3대세습만을 겨냥한 게 아니라, ‘북중 특수관계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후대에 계속 이어져야 하니 김정은 후계세습도 그 속에서 도와달라’는 의미다. 김정은의 3대세습은 북중관계의 큰 틀의 일부에 해당할 뿐이다. 따라서 현상과 주변에 해당한다. 


이번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언론이 주로 3대 세습에 집중하는 이유를 파고 들어가 보면 북한문제를 주로 ‘남북관계’라는 시야로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지난 시기 오로지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나빠지는 문제’만 관심이 있었던 하류(下流) 북한전문가들의 폐해도 스며들어 있다. 그런 문제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둘째, 김정일이 베이징이라는 중국 외교의 공식적인 수도를 택하지 않고 동북 3성으로 가서 정상회담을 한 이유는, -(후진타오 주석의 휴가지가 동북 3성이었다는 말은 그냥 말뿐이고)- 미국에 대해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우리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의미가 숨어 있다. 


김정일의 이 제스추어는 2000년 6.15 정상회담 당시 순안공항에 내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덥썩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백화원초대소로 향하면서, 미국에 대해 ‘우리민족끼리 이야기한다’는 사인을 보낸 것과 유사하다. 특히 평양에 와있는 카터 전 대통령을 엿먹이고 중국으로 가버린 김정일의 모습에서 미국의 불쾌감을 자극하고, 북한문제를 매개로 미중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려는 김정일의 전술-사실은 외교 잔머리인데-이 읽혀진다.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하여 미중-남북이 얽혀있는 서해를 분쟁수역화 해서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간 군사긴장을 고조시키고, 이를 통해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을 강제하기 위한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가려는 전술이나, 이번에 동북 3성에 가서 후진타오를 만나 ‘북-중 우리끼리’ 정상회담을 한 것은, 크게 보아 대미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따라서 여담이지만, 김정일의 방중으로 서글프게 된 사람은 카터 전 미대통령과 카터의 방북을 매개해준 조지아대 박한식 교수일 것이다. 우리 생각에는 나중에 김정일이 두 사람에게 사과해야 당연하겠지만 김정일은 그런 문제에 일체 신경쓰지 않는다. 도리어 김정일은 ‘박한식이란 자가 누구지?’ 하는 식으로 오리발을 내밀지 모른다.   


그러면, 중국은 김정일의 이같은 수(手)를 모르고 있을까? 아마도 충분히 알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 이후 전개된 미중간의 갈등양상에서 중국 지도부는 ‘우리의 대미전략에서 북한은 여전히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북한이 중국을 대신해서 활약해주는 정도의 국익에 김정일이 계속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 김정일로서는 천안함 사태 이후 한미연합훈련과 이에 대응하는 중국의 군사훈련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김정일의 방중 목적을 압축하면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첫째,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원 요청이다. 핵심은 식량지원, 대북 투자 등 경제분야 지원과 변함없는 외교적 지원이다. 김정일이 김정은 3대 세습 후계체제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요청한 것은 이 두 가지에 포괄된다.      


둘째, 김정일은 북한과 중국이 힘을 합쳐 미국과 한국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래서, 6자회담을 재개하자고 주장하면서 천안함 국면을 덮어버리고 ‘동북아 평화모드’로 전환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6자회담 재개가 논의되기 시작하면 북한은 미-북 주도의 한반도평화협정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한국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한국과 미국 때문에 동북아 평화가 깨진다’고 공격하면서 과거 부시 정부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 김정일이 핵실험을 함으로써 미국을 곤경에 빠뜨렸듯이, ‘3차 핵실험’ 운운하면서 미국에 협박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중국이 원하는 대로 6자회담 재개 분위기에 편승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또 김정일로서는 남한내 이른바 ‘평화론자’들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힘을 얻게 되는 부수 효과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6자회담 재개’ ‘창지투 개발선도구 추진 및 북한 지원’  등 물 위로 드러난 주제가 아니라, 김정일이 물 밑에서 후진타오에게 요구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후계체제를 맞이하여 북한의 개방과 중국의 경제지원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고, 김정일의 관심은 여전히 군사 분야일 것으로 본다. 즉, 김정일은 전투기 지원 등을 중국에 요청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또 김정일은 ‘만약 한미가 서해 등에서 합동군사훈련을 계속하면서 도전(?)해올 경우 한국을 강력히 타격할 수도 있으니 그때 중국은 모른 척 해달라’는 뉘앙스를 전달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정일은 한번 더 한반도에 긴장을 일으키고 그 힘을 바탕으로 대북제제 철회 등 한미 정부의 양보를 받아내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G20을 앞두고 있는 우리는 이 점에 더 유의해야 한다. 만약 김정일이 한번 더 천안함 공격과 같은 군사행동과 G20 테러 등의 조짐을 보이면, 그 기회를 잡아 김정일 정권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결정타를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