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알몸을 본 사나이

소천엽랭채, 소쫄뚜기튀기은행즙, 야자상어날개탕, 염소고기샤슬리크, 뱀장어카비아, 통배추건밥조개살찜, 대군상어날개홍쏘, 물고기룡정차철판볶음, 라클레트치즈구이…….

이런 요리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언뜻 보아도 대단히 진귀한 고급요리인 것이 느껴지는, 바로 이런 요리가 김정일의 식탁에 올라간다. 그냥 예로 든 것이 아니라 2001년 3월 25일부터 3월 30일까지 차려진 실제 메뉴에 담겨 있는 수십 종의 요리 이름 중 몇 개를 골라 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김정일의 요리사로 10여 년 동안 일하면서 그의 식탁에 올라갈 음식을 만들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 씨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후지모토 겐지 씨가 쓴『김정일의 요리사』는 그가 북한에서 경험한 일들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책이다.

‘원 모어’를 외치는 김정일

1982년 8월 후지모토 씨는 일본조리사협회 회장으로부터 “북조선에서 일해보지 않겠는가”라는 제안을 받는다. 북한에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어 선뜻 결정을 못했던 그는 월급 50만 엔(한국 돈 500만 원)에 솔깃하여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양에 발을 딛는다. 평양에서 일하던 중 그는 초밥 출장 주문을 받고 북한고위층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 앞에서 초밥을 만들어 대접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다랑어 뱃살, 원 모어(One more)!”를 외치는 어떤 사나이를 만나게 된다.

“그날은 북조선군 고위관리의 결혼기념일로, 밤늦도록 김정일의 전용 배에서 선상 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그 사람은 한껏 기분이 고조된 듯 도로(배받이살), 방어, 전갱이 등등 끊임없이 생선이름을 들먹이며 ‘원 모어’를 외쳐댔다. 그때 나는 초밥을 만들면서 ‘이 사람은 기름진 음식을 꽤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책 55쪽)

다음날에야 북한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고 ‘원 모어’를 외치던 그 사나이가 김정일임을 알게 된 후지모토 씨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하긴 평범한 요리사가 국가 최고권력자 앞에서 음식을 만들었으니 가슴의 두근거림이야 오죽 했겠는가. 열흘 후 후지모토 씨는 김정일 관저의 ‘8번 연회장’이라는 곳에 불려가 김정일 앞에서 다시 초밥을 만들게 되고, 이러한 호출은 1983년 5월 계약 기간이 만료하여 북한을 떠날 때까지 여러 차례 반복된다.

호화로운 별천지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후의 호기심과 동경심이라고 할까. 1982년에 처음으로 북한에 갈 때는 두렵고 초조하기만 했던 후지모토 씨는 일본에 돌아오고 나서는 은근히 북한이 다시 자신을 불러주기를 기대한다. 결국 4년 후 북한에서 직접 찾아온 사람을 통해 월급 60만 엔의 계약으로 다시 북한 땅을 밟은 후지모토 씨는 도착 후 얼마 안 있어 그는 고대하던(?) 김정일의 연회장에 불려가고, 8만 엔이라는 푸짐한 팁까지 받는다. 그리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김정일의 호화스러운 생활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1987년에 일시 귀국했다가 이듬해인 1988년 1월 북조선으로 되돌아간 다음부터 나는 매달 세 번 정도 김정일의 부름을 받았다. 게다가 3월부터는 초밥 출장이 아니라, 도박의 일종인 바카라 상대로 가는 일이 많아졌다. 그 당시 김정일은 바카라에 푹 빠져 있었다. 가진 돈을 칩으로 바꾸고 일정한 높이까지 칩이 쌓이면 경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해놓았다. 경품은 호화로웠다. 일제 카메라나 CD 컴포넌트와 같은 가전제품, 온수청정기(비데), 피아노, 김일성 금화, 소니 캠코더 등 하나같이 놀랄 만한 것들이었다.”(책 76쪽)

“북조선에는 ‘초대소’라 부르는 김정일의 호화 별장이 곳곳에 있다. 내가 김정일과 동행했던 초대소는 열 곳 남짓 된다. 백두산(북조선 최북부), 함흥(별칭 ‘72호’. 북북동 동해 쪽), 영흥(북동부 동해 쪽), 원산(북동부 동해 쪽), 신천(남남서), 창성(북북서), 묘향산(북조선의 5대 명산 중 하나), 평양, 대동강(평양 시내), 강동(별칭 ‘32호’. 평양 근처) 등이다.”(책 97쪽)

도시락을 싸러 모스크바로

1988년 김정일에게서 “10년 동안 내 곁에 있어 달라”는 제안을 받은 후로 후지모토 씨는 줄곧 김정일의 곁에서 그의 사생활을 지켜본다. 후지모토 씨의 표현대로 김정일의 생활은 ‘별천지’이며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김정일은 후지모토 씨에게 운전면허가 있는지를 물은 후 갑자기 주차장으로 데리고 가 그곳에 있는 벤츠 중 한 대를 선물로 준다. 번호판도 김정일의 핵심 측근만이 받을 수 있는 ‘216’ 번호판을 받는다. 김정일의 주선으로 북한의 젊은 가수와 결혼을 하고 방이 8개 달린 고급주택도 하사받는다. 그의 집에는 온갖 외국산 가전제품과 가구들이 갖춰져 있었다 한다.

그는 김정일과 동행하며 오리잡이, 물개잡이를 다니고, 수상오토바이 경주를 즐기며, 김정일의 아들들을 위해 당구와 농구를 가르쳐준다. 1993년에는 김정일의 집사 노릇을 하는 김창선과 모스크바로 급히 출장을 가게 되는데, 그 이유는 “김정일의 가족이 유럽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모스크바에 들를 예정인데, 그 시간에 맞춰 기내로 도시락을 넣어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는 게맛살 초밥과 은대구 조림을 메인 요리로 하고 닭튀김, 야채샐러드, 다랑어 튀김, 계란말이, 유부초밥 등을 곁들여 로열패밀리를 위한 ‘도시락’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 먼 모스크바까지 달려가서.

코냑과 굶주림, 극단적 빈부 격차

후지모토 씨는 “북조선만큼 빈부의 차이가 심한 나라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면서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빈부의 차이가 그렇게 날 수 있을까”라고 의문스러워 한다.

후지모토 씨는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서 그의 초대소와 연회장만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북한 일반 주민들의 생활을 잘 알지 못한다. 그가 20년 동안 북한을 오가면서 여염집의 생활을 목격한 것은, 그의 북한 아내인 엄정녀의 집을 몰래 갔다 온 것뿐이다. 엄정녀 씨가 해외공연을 다니는 북한의 인기 가수여서 그녀의 가정형편은 일반 주민들에 비해 훨씬 나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김정일의 호화스러운 생활만을 보다가 일반 주민들이 사는 집을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후지모토 씨는 말한다.

“그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방에서 무려 여섯 식구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방 하나가 더 늘었다고는 하지만, 방이 여덟 개나 되는 우리 부부에 비해 너무 차이가 났다. 그것이 북조선의 실상이었다. 풍요로운 생활은 일부 특권층에만 주어졌을 뿐이다. 아내의 가족을 통해 북조선 사회의 불공평한 현실을 직시한 나는 착잡한 심경을 한동안 떨쳐버릴 수 없었다.”(책 93쪽)

후지모토 씨의 책을 읽으면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생각해 본다면 김정일 정권의 본질에 대해서 더욱 똑똑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이 초밥을 먹으면서 ‘원 모어’를 외치고, 도박 바카라에 빠져서 일제 카메라와 CD 컴포넌트를 상품으로 내걸고, 수상 오토바이 경주를 즐기고, “위스키로는 ‘조니워커 스윙’을, 꼬냑으로는 ‘헤네시 X.O’를 즐겨마시던” 그 때에 북한 주민들은 엄청난 식량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에 눈 감는 이들에게

지금 후지모토 씨는 일본의 모처에 머물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김정일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최초의 책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의 저자 이한영은 김정일의 처조카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보낸 공작원의 총에 맞아 죽었다. 김정일이 자신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밝힌 후지모토 씨를 그대로 두고 볼 리 없다.

이렇게 후지모토 씨가 ‘목숨을 걸고’ 쓴 책을 아직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우선 그런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주 극소수이긴 하지만 김정일을 ‘통일 대통령’으로 모시려는 야심을 갖고 남한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총련(韓總聯)의 일부 운동권 학생들에게 이 책을 수십 권씩 사주고 싶다. ‘북한을 모략하려는 거짓선전’이라고 아직도 예와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다면, 이 책의 맨 앞부분에 있는 수십 장의 사진을 보여주자. 그러고 나서 ‘이러고도 믿지 않는다면 눈은 무엇 하러 달고 다니며 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고 따져 묻자. 『김정일의 요리사』는 굳이 본문을 읽지 않아도 앞장의 사진과 그 해설만으로 모든 것을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The DailyNK 기획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