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실패’부터 따져야 바른 순서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적인 일,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더더욱 인간적인 일”이라는 ‘제이콥의 법칙’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자신의 착오와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다른 사람, 또는 외부적 요소에 미루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의 실패”를 언급했고, 발언에 대한 여야의 질책이 잇따르자 대통령이 장관을 두둔하고 나섰다. 예의 다듬어지지 않는 표현방식을 섞어가며 “미국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하면 안됩니까”라고 물었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정책적 판단이 잇따르고, 어느 때보다 동맹 ∙ 유관국 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때에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발언은 삼가는 것이 좋다. 그것은 한국이 미국을 향해서도 그렇고, 미국이 한국을 향해서도 그렇다.

6자회담 거역한 김정일의 실패

북한 미사일 사태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자면 우선 북한이 ‘왜 쏘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다. 물론 자세한 내막은 발사버튼을 누른 김정일에게 캐물을 일이다. 여러 설명과 추측이 있지만 모두가 확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와 다수의 햇볕론자들은 “북한은 미-북 양자 담판을 바랐고, 미국이 이를 거절한 것이 무력시위의 배경”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래서 “미국의 실패”라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미-북 협상을 바란 북한의 요구가 옳았거나, 최소한 상황적 타당성이라도 존재했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옳지 않은 주장에 호응해주지 않은 것을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05년 9.19공동성명에 이르기까지 6자회담은, 오랜 진통을 겪긴 했지만, 그 효용성을 인정받아 왔다. 미-북 양자에 의한 제네바 합의가 파기된 데 따라 생겨난 6자회담은 다자간 협상을 통해 합의 ∙ 이행과정의 투명성과 객관성 보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 번의 실수는 없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며, 여기에 참가국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다시 한번 ‘미-북 담판’을 요구하는 것은 6자회담 참가국 모두를 불쾌하게 만드는 행동이며,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다. 6자회담 틀 내에서도 쌍방간 이해관계가 앞서는 문제에는 양자회담 형태의 논의가 이루어져 왔으며, 북한이 미국에 특별한 요구사항이 있다면 이를 잘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북한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부분은 대북 금융제재 조치이다. 이에 대해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동결된 북한의 2천400만 달러는 6자회담이 재개되면 1주일 치의 에너지 지원분에도 미치지 못 한다”면서, 북한이 그런 미미한 돈에 왜 그렇게 목을 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의문을 제기했다. 힐 차관보뿐 아니라 합리적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한편, 미국은 대북 금융제제 조치의 배경에 대해 북한 관리를 불러 자세한 설명까지 해준 바 있다. 북한이 논리적으로 우세하다면 우방국들까지 참여하는 6자회담에서 그 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 틀을 깨버리려 하고 혈맹인 중국마저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안에 동의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명백히 김정일의 착오이자 실패이며, 다른 무엇보다 강력히 이것을 지적하는 것 또한 6자회담 참가국으로서의 순리다.

포용했는데도 미사일, 당연히 포용의 실패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국 정부와 햇볕론자들은 대체로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떻게 뒤통수를 칠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바로 이것이 대북포용정책의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는 발언이다.

강경정책을 폈을 때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면 그것은 실패라 할 수 없다. 응당 나와야할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용정책을 폈는데도 미사일을 쐈다면, 그것은 당연한 실패다. 기대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똑같이 얻어맞았는데, 할 말 하고 맞았다면 본전이지만, 간 쓸개 다 빼주고도 맞았다면 2중의 손해다. 이는 초등학생 정도면 알 수 있는 셈법이다.

임기의 마지막 해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그동안의 착오와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것을 남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어지간한 바보는 구제할 수 있지만 지독한 바보는 도저히 구제할 수 없다”는 격언을 북한의 김정일에게만 적용하고 싶은데, 근묵자흑(近墨者黑)의 원리처럼 남한 정부가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