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년사와 한국의 숙명적 과제

매년 1월 말이면 미국의 대통령은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국정전반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연두교서(State of Union)를 발표한다. 행정부의 정책과 대통령의 소신을 밝혀 의회에 입법을 권고하는 효과도 얻고, 전 국민 앞에서 1년간의 국정방침을 밝히는 중요한 정치행위다.


북한은 1월 1일이면 노동신문 등에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해왔다. 이는 앞으로 1년간 북한의 입장과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로 평가된다. 특히, 올해는 김정은이 직접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해 더욱 주목 받았다.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첫째, 북한의 신년사는 왜 이다지도 주목받는 것일까. 둘째, 얼마나 북한의 향후 입장이나 인식을 반영하는가. 셋째, 그것은 과연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가. 넷째, 금년 신년사는 과거 신년공동사설과 어떻게 차별되는가. 이 네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이 북한 신년사의 정치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모든 사회주의 국가가 마찬가지지만, 특히 북한처럼 유일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사회일수록 체제의 내적 완결성은 자유주의 체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다. 그 아무리 비효율과 경직성이 만성화됐다 해도 말이다. 그러니 그 체제의 공식 신년사가 그 체제가 추구하는 국정 전략에 배치되는 내용을 담을 수는 없다. 다만, 단기적인 전술적 변이는 용인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 신년사의 신뢰도는 그 내용의 구체성이 기존 체제전략과 얼마나 일관성 있게 담겼으며 무엇이 전술적 변화에 불과한 것이냐의 문제로 환원된다.


올해의 신년사를 둘러싸고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제시됐다. 첫째, 북한의 대외전략이 바뀔 것이라는 조심스런 낙관적 가능성이다. 둘째, 단기적 이익을 얻기 위한 전술적 변화를 꾀한다는 분석이다. 셋째, 북한체제가 대결지향에서 내부 안정화를 다지려는 일시적 방향전환을 추구한다는 시각이다. 모두 각각의 타당성과 근거를 충분히 갖춘 해석이다.


올해의 신년사는 몇 가지 주목할만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김일성 사후 첫 육성연설로 전달했다는 점이다. 손자 시대에 할아버지 방식의 복고적인 대중전달로 회귀한 것이다. 둘째 호전적 구호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셋째, 선군정치 주도에서 당 역할의 강조로 분위기가 바꿨다. 넷째, 대남 유화기조의 회복 모양새다.


이런 특징은 과연 남북관계, 북미관계, 동북아 관계 등 북한의 대외관계 전략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대외전략, 특히, 대남전략이 무엇이고 그것이 바뀔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가늠해보는 것이 순서다. 1980년 제6차 당대회 이후 북한은 여전히 ‘전(全) 한반도의 공산화’를 지상과제로 하고 있다. 어떤 전술적 변화를 보이든 남한의 적화통일이라는 근본전략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북한으로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내부개혁을 시도한 모든 사회주의 체제는 자체모순의 악화로 자멸한다(J. 코르나이)는 것이 사회주의 역사의 경험칙이다. 북한 내부의 개혁도 이 같은 딜레마 속에서 개혁목적과 체제모순 사이의 벼랑끝 줄타기를 타고 있다. 핵과 탄도미사일 같은 확고한 군사적 안전망은 그 벼랑을 연결하는 든든한 한 쪽 기둥 같은 역할을 한다.


지난 연말 대륙간탄도 미사일 발사 성공으로 북한은 어느 정도 대내외 정치·군사적 자산을 확보했다. 다방면으로 쓸 수 있는 카드를 쥐고 있으니 내부는 다지고(과거 ‘총공세와 총진군’에서 ‘창조와 혁신’으로) 남한을 향해서는 대화의 장(場)에서 만나자(‘남북공동선언 존중과 이행’하자)고 손짓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그럼 이런 북한을 상대로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 한마디로 답할 수 없는 이 질문만이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한, 통일의 그 날까지 한국이 안고 가야 하는 숙명적 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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