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式 기업 정책의 명암… “이상적이지만 과도한 계획이 문제”

[김정은 집권 10년⑬] 공장 근로자들 "자율성 최대한 보장해야...수입‧수출도 자유로워졌으면"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
평양어린이식료품 공장.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노동신문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집권 첫해 주민들에게 한 첫 약속이었다. 미숙해보였던 20대 청년 지도자의 첫 연설이 주민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사실 김 위원장의 집권 초기 경제 조치도 개혁적 성과를 기대하게 할만한 요소들이 존재했다.

특히,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경제개혁 조치인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기업에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국영기업의 운영이 시장 메커니즘으로 확대됨에 따라 시장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10년차를 맞은 현재, 여전히 중앙 정부의 과도한 국가지표 하달과 대북 제재 및 코로나 사태와 같은 대외 환경 악화로 북한의 많은 기업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데일리NK는 실제 북한 노동자들은 김정은 정권의 대표적 기업 정책인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방의 의류공장 노동자 A씨(이하 A)는 “중앙에 올리지 않고 기업소가 자체적으로 계획하고 생산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은 좋은 취지였지만 국가에 반드시 내야 하는 중앙지표가 너무 높아 초과 생산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평양의 식료가공공장 직원 B씨(이하 B)도 “간혹 어느 지방공장에서 120% 초과 생산을 달성했다고 노동신문에 나오면 다들 코웃음을 친다”며 “허위 보고를 한 것이지 실제로 계획보다 20%를 더 많이 생산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국가에 헌납해야 하는 의무 생산 목표치가 너무 높아 기업이 자율성을 발휘해 수익을 낼만한 운신의 폭이 너무 좁다는 얘기다.

[아래는 북한 기업소 노동자 A, B와의 인터뷰 내용]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로 인해 기업소나 공장의 자율성이 확대됐다고 평가하나

A = “기업소가 기지(소규모 무역 그룹)를 스스로 조성할 수 있게 해서 무역을 하게 해주고 생산 이외에 돈을 벌 방법을 만들 수 있게 한 건 의미가 있는 시도였다. 그런데 실제 공장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계획을 국가가 내려 먹이는 게 문제다. 국가에 30%를 헌납하고 기업소가 70%를 갖는 구조도 힘든데, 지금은 40%을 바치라고 하고 있다. 기업이 지속 생산량을 늘릴 수 있게 해주지 않고 있다.”

B = “계획은 국가가 기업소에 내려 먹이는데 모든 책임은 기업소가 진다. 국가 계획분을 바치는 것은 물론이고 종업원 월급 주고, 기계가 멈추지 않게 하는 모든 노력이 기업소 책임이다. 자율보다는 책임이 커졌다고 본다. 그래서 책임관리제가 아닌가.”

국가계획이 과도한데 지속 헌납해야 하는 과제량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A = “기본적으로 기업소를 총화(평가)하는 간부들의 문제이지만 이들도 국가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항상 더 높은 계획량을 내놔야 한다. 계획지표를 줄여 놓으면 전진하는 계획이 아니라 퇴보하는 계획을 줬다는 비판을 받는다. 공장의 생산 목표를 평가해야하는 간부가 ‘이 공장의 실질적인 생산량은 알려진 것보다 적으니 계획도 줄여야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러니 코로나로 무역이 안 되고 자재를 들여올 수 없는 상황이 됐는데도 계획 지표가 줄어들지 않는다. 자재가 없어도 무조건 작년 생산만큼은 해야 하는 것이다.”

평양가방공장
평양가방공장.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서광홈페이지 캡처

코로나 명목으로 국경이 봉쇄됐고 무역이 장기간 제한되고 있다. 그러면서 당장 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수입하기 힘든 상황인데, 공장을 어떻게 운영하나. 국가계획분을 어떻게 채워 국가에 납부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B = “그래서 국가가 국산화와 재자원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을 법으로 쪼아 박아 놓고 중앙에서 검열까지 하면서 틀어쥐고 있으니 기업소가 실질적인 생산을 할 수가 없다. 국산화, 재자원화로 부족한 자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은 기업소가 밀수를 해서라도 자재를 들여와야 한다.

부족한 자금은 기업소에 걸려있는 8.3돈(노동자가 개인 경제활동을 하려할 때 기업소 소속이지만 출근하지 않는 명목으로 매달 기업소에 납부하는 금액)이나 기업소에 딸린 목장이나 부업지를 운영해서 필요한 식량이나 돈을 충당한다.

요즘은 생산품이 아니라 돈으로 국가지표를 납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미달분을 다음 해에 내야한다. 결국 국가계획은 어떻게 해서든 채워야 한다. 국가계획은 법적인 지령이다.”

–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실시 후 가격 자율성이나 상품 판매권을 기업소가 갖게 되면서 발생하는 이익은 없나

A = “자재를 직접 조달하는 다음 과정에서 생산되는 생산품은 물론이고 부산물을 공장이 직접 처분할 수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국가에 바치면 국정가격 수준밖에 안 되지만 시장에 팔면 3배 정도 비싼 가격으로 팔고 그만큼 이문을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초과 생산을 하면 기업소는 당연히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그 양이 늘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지만 시장이 있어서 그나마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라고 본다.”

기업소나 공장의 경제적 성장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 “수입, 수출이 자유로워지면 경제는 좋아진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그나마 경제가 좋았던 때라고 말하는데 그때는 무역이 잘 됐기 때문에 기업도 잘 돌아갔다. 하지만 당장 무역을 풀리지 않더라도 인원 동원만 사라져도 공장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

김매기요, 모내기요, 가을걷이(추수) 전투요, 건설 동원까지 때마다 사람들 데려가 일을 시키니 공장이 돌아갈 수가 없다. 평소에도 국가 동원이 많은데 자연재해라도 한번 일어나면 그 지역 기업소가 모두 기계를 멈추는 수준이다.”

B = “보위부나 안전원 또는 지역 간부들이 사적으로 부탁하는 주문 때문에 생산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 식음료공장은 특히나 지역 간부집 결혼식이며 돐(돌) 생일에 따로 바쳐야 하는 량이 상당히 많다.

이런 생산은 돈도 못 받는다. 기업소가 공짜로 제공하는 뇌물인 거다. 그러면서도 다 기업소와 결탁이 돼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다. 간부들하고 결탁돼 있어서 국가계획을 다 못하거나 중앙에서 검열이 들어와도 뇌물 주고 무마할 수 있는 것인데, 그렇다 해도 이런 부패가 너무 만연해 있다. 이런 부분만 해결해도 기업소 경제가 나아지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