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이는 북한, 길들여지는 남한

▲ 북한 청년학생협력단 여학생 <사진:연합>

1일자 중앙일간지와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일제히 ‘김일성민족 로봇’들의 일체화된 율동모습이 담긴 사진을 실었다.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청년학생협력단’ 단원들의 집체응원 모습은 바로 ‘김일성민족 로봇’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북한에서 온 대학생 미녀들은 124명 모두가 꼭 같은 흑백의 한복차림, 꼭 같은 머리스타일, 꼭 같은 응원소도구를 갖춘, 말 그대로 ‘하나의 모습’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응원을 할 때에도 앞에 나선 지휘자의 지시에 맞춰 흐트러짐 하나 없는 율동에 눈매와 미소까지 꼭 같은 모습을 연출해냈다. 그들은 획일화가 일상인 듯 스스럼이 없고 거기에 자부심마저 느끼는 듯했다.

며칠 전 금강산에서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에서도 고령의 북측 이산가족들은 한결같은 옷차림에 모자까지 똑같았다. 심지어 남성들은 양복의 색깔까지 같고, 대화에서 김정일 찬양을 찬양하는 형식도 비슷했다. 물론 사전에 철저한 교육을 받았으리라.

지금껏 북한에서 온 응원단, 상봉단, 참가단은 모두가 하나같은 모습들을 보여주려 애를 썼다. 북한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정상적인 모습들이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와 개성을 중시하는 남한사회로서는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북한정권 역시 그러한 획일성이 남한주민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줄기차게 획일적인 모습을 연출해 내고 있다. 어떻게든 북측의 방식에 맞춰보려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남한을 ‘길들이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길들이기’를 ‘우리민족끼리’나 ‘민족공조’라는 메시지로 포장하고 있다.

“수령 앞에 우리는 하나”

북한 주민들의 획일적이고 일체화된 행동, 거의 비슷하게 꾸미는 외형, 지극히 기계적이고 의도된 표정 등은 “수령과 당에 끝없이 충직한 인민의 모습”이자 북한정권이 추구하는 통일조국의 미래상이다.

북한뿐 아니라 남한 인민까지 그러한 ‘로봇’으로 만드는 것이 북한정권의 궁극적 목표다. ‘8.15민족대축전’에서 보여주었던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는 사실 “수령 앞에 우리는 하나”의 줄임말이다.

북한 인민은 ‘김일성헌법’과 ‘김일성사상’의 통제를 받는 ‘김일성민족’이다. 북한의 2천2백만 인민들은 김일성민족의 현재 주인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명령에 살고 죽는다. 행동과 생각과 표정 모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과 뜻, 의지대로 움직이는 인간로봇이 오늘날 북한 인민이다. 결국, 안타까운 표현이지만, 북한 ‘김일성민족 로봇’이라 불러도 크게 잘못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이번 북한 청년학생협력단은 ‘김일성민족 로봇’의 실체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대한민국 상당수의 국민은 이제 이것을 아무런 불편 없이 받아들이고, 일부에서는 감동까지 느낀다고 말한다. 거의 완벽하게 길들여진 것이다.

언젠가 길가의 현수막에 그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비에 젖고 있다고 통곡하며 ‘모셔가던’ 150여명의 북한응원단 여성들은 ‘김일성민족 로봇’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너무 행복해서인지 통일을 다분히 감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개성 있는 자유인간이 하나되는 통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김일성민족 로봇’으로 하나되는 통일을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로봇이 되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승철 / 북한연구소 연구원 (함흥 출생, 1994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