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대북투자 ‘꿈틀’..서방에선 영국계 선도

최근 북핵 문제 진전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북투자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서방에선 영국계 자금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5일 자유아시아방송(RFA)와 2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영국의 개발도상국 전문투자사인 ‘파비엔 픽테트’의 리처드 얄롯 회장이 대북투자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에 방북 신청을 했다.

이달 하순이나 내달초 방북 예정인 얄롯 회장은 북한 실무자들과 만나보고 기금조성 시기와 규모 등을 확정할 예정인데, 기금 규모를 현재 대략 1억달러로 상정하고 있다고 RFA는 전했다.

얄롯 회장은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에선 “5천만달러 이상을 북한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고 “그러나 한국의 상장기업들에 5억달러를 투자한 뒤 나중에 이들과 함께 (북한에) 가는 것은 매우 쉽다”고 말했다.

파비엔 픽테트는 이미 2004년 대한 투자기금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앞으로 대북 진출 준비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얄론 회장은 말하고 “LG와 현대그룹을 포함해 한국기업들은 20억달러 정도를 북한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파비엔에 앞서 이미 영국 ‘글로벌그룹’은 ‘국제김일성기금’ 만들었고, 이 그룹의 조니 혼 회장이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기금 창설식에 참가하는 등 서방에서는 영국계 회사가 가장 적극적으로 대북투자에 눈돌리고 있다.

이와 관련, 런던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RFA와 통화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런던 금융시장에서 북한 채권 거래가 다소 활기를 띄고 있다”면서 “파비엔사의 대북 투자건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요즘 북한의 투자환경이 1980년대 초 서방 투자사들이 진출하던 중국의 개방 초기와 비슷하다”며 “근래 한반도 정세가 호전되면서 투자자들이 과거 중국의 경우처럼 장기적 측면에서 대북투자가 충분히 수익성이 있다는 판단을 갖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대북 직접투자 기금인 조선개발투자펀드(CDIF)를 운용하고 있는 ‘고려아시아’의 콜린 매카스킬 회장은 “지난달 대북 투자기금을 5천만달러에서 1억달러로 증액했다”고 밝혔다.

역시 영국계 투자전문회사인 고려아시아는 ‘앵글로시노캐피털’이 2005년 설립한 조선개발투자펀드의 투자 자문을 맡고 있다.

올해 하반기 한반도 정세가 호전되면서 대북투자에 대한 관심은 국제사회에서 확산 추세다.

이집트의 시멘트제조 및 건설업체인 오라스콤(OCI)의 최고경영자(CEO) 나세프 사위리스는 지난 7월 “북한이 기반시설 구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면서 북한 상원시멘트에 1억1천5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에는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가 북한과 ‘투자보호 및 지원 협정’을 승인하고 대북투자 로드맵을 작성할 것을 지시했고, 싱가포르는 같은 달 투자시찰단을 평양에 보내 김영일 내각 총리와 만나도록 했다.

이미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중국도 류샤오밍(劉曉明) 북한주재 대사가 9월 북한의 라선시(라진.선봉)와 청진시를 둘러보는 등 대북투자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실제 중국의 3대 철강회사로 꼽히는 탕산(唐山)철강그룹이 함경북도 김책공업구에 연생산 150만t 규모의 제철소를 설립하기로 합의했으며, 함북 온성군에는 북.중 공동 물자교류시장이 들어설 것으로 전해졌다.

캄보디아를 방문한 김영일 총리는 지난 1일 훈센 총리와 만나 ‘투자장려 및 보호 협정’과 ‘해상운수 협정’을 체결하는 등 북한도 투자유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업계 역시 정상선언 채택을 계기로 남북경협 활성화와 대북투자 확대에 대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렇게 적극적인 대북투자 움직임에 대해 본격적으로 북한에 진출하기에는 투자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앤더스 오슬룬드 박사는 RFA와 인터뷰에서 “북한 경제는 크게 왜곡돼 있는 데다 서방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법이나 제도가 아직 체계화되지 않았다”며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런 버핏도 지난달 방한해 “북한의 상황이 굉장히 많이 달라져야 투자가 가능할 것 같다”면서 “내 생에 그런 일이 있다면 좋겠지만 너무 먼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해외자본은 ‘미개척지’인 북한의 투자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 최신호는 1일 북한의 높은 교육 수준과 값싼 노동력, 풍부한 천연자원과 더불어 핵 위기, 일관성없는 정책, 정치 상황의 변화 가능성 등 대북 투자의 장.단점을 소개하면서 북한이 “위험한 투자 대상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투자지”라고 규정했다.

경제제재 속에 얼어붙었던 대북투자 환경이 본격적으로 해빙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