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정상, 북핵 폐기시 상응조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중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18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 해결 방안과 한미 동맹 현안에 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지난 9월 워싱턴 회담에 이어 3개월여만에 열린 이번 회담은 북한의 핵실험 강행과 북·미·중 3자합의를 통한 6자회담 재개를 앞둔 시점에 이뤄진 것이어서 북핵 해법의 조율결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 후속 조치에 대한 의견조율 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양 정상은 내달로 예정된 6자회담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논의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고, 한국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PSI(확산방지구상) 전면참여 유보조치 발표에도 불구하고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 및 핵실험후 한미 양국이 취하고 있는 대북 관련조치를 상호 ’양해’하는 선에서 인식의 간극을 메운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한ㆍ미 정상이 북한 핵폐기시 경제지원, 안전보장, 평화체제를 담보해줄 수 있다는 입장을 공유한 점은 내달중 재개되는 6자회담에 복귀할 북한을 향한 분명한 메시지로 볼 수 있다.

1년여만에 복원되는 6자회담 테이블이 재개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해 베이징(北京)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실질적인 진전의 계기로 작용, 북핵 해결의 분명한 모멘텀이 돼야 한다는 양 정상의 공통된 인식이 반영됐다는 평가이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후 노 대통령과 가진 공동 언론 브리핑에서 “북한이 핵무기와 핵 야망을 포기하면 북한의 안전보장과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에 대한 협의에 들어갈 것이라는 점을 북한 지도자들이 알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이틀전 싱가포르 국립대 연설에서 “만약 북한이 평화적인 길을 택한다면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당사국은 북한 주민들을 위해 안보를 보장하는 한편 경제적 지원과 다른 혜택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공언했고,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도 재삼 싱가포르 연설내용을 상기시켰다.

부시 대통령이 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형식이 아니라 자진해서 싱가포르 발언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며 ‘키워드’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이를 한ㆍ미 정상회담 결과물로서 북측에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이번 회담의 핵심적 메시지는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6자회담 관련국이 경제적 지원과 안전보장을 해 줄 수 있다는 입장 표명”이라고 말했다.

송민순(宋旻淳) 청와대 안보실장은 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할 때 어떤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도있게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고 전했다.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9.19 공동성명에 포함돼 있는 경제, 에너지 지원 등이 상응조치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문제는 북미 관계정상화와 연결고리를 가진 사안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 일본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은 15일 하노이 3자회동에서 6자회담 목표에 관해 논의하면서 북한이 영변 5MW 원자로 등 핵관련 시설중 일부의 동결 또는 폐기, 핵무기 및 관련 시설 보유현황 신고를 이행할 경우 관련국들의 상응조치로 중유제공 등의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배경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메시지는 사흘전 6자회담 수석대표 레벨에서 논의된 상응조치의 인식을 추인하고, 양국의 최고위층인 정상 레벨에서 북측에 보다 더 선명한 신호를 보내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날 회담에서 “북한 핵문제를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해결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송민순)는 대목은 이번 6자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겠다는 양 정상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참여정부 들어 대북 경제지원 및 안전보장과 관련한 메시지가 언급된 한미 정상회담은 북핵 해결에 일정한 전기를 제공해 왔다는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회담도 내달 6자회담의 실질적 진전에 기대를 걸 수 있게 하는 측면이 있다.

지난 2003년 10월 태국 방콕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제2차 한미정상회담 당시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다”며 대북 불가침 의사를 천명했고, “미국이 북한의 안전보장 제공과 관련된 방안을 문서화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 정상회담은 구체적인 대화형식 등이 모색되던 6자 회담의 틀이 구체화되는 계기를 제공했고 이듬해 2월 6자회담 재개로 이어졌다.

지난해 6월11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폭군’이라는 호칭 대신 ’미스터 김정일’로 지칭했고, 양 정상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면 다자안전보장, 에너지 포함 실질적 지원, 북미간 정상관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후 7월27일 북한의 핵보유선언으로 좌초됐던 6자회담이 13개월만에 재개됐고, 9.19 공동성명이 도출되기에 이른다.

이런 맥락에서 양 정상이 재차 대북 안전보장, 경제지원을 재확인했다는 점은 핵폐기를 위한 북측의 성의있는 조치를 견인하는 유인구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미 양측은 ’선(先) 안전보장-후(後) 북핵포기’냐, ’선(先)북핵폐기,후(後) 안전보장’이냐를 놓고 맞서는 등 상호 신뢰부족으로 매번 교착상태를 극복하지 못했던 만큼 이번 6자회담에서는 상호신뢰 구축이 선결 요건이 될 전망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