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 국제금융범죄 방지망 2% 부족”

미 국무부가 2005년 3월 발표한 연례 ‘마약통제전략보고서’ 한국 대목을 보면, 미국의 테러자금조달금지법 제정 주문은 이번에 돌출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한미간 줄곧 제기돼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국무부의 보고서는 또 각종 금융범죄 및 돈세탁 방지를 위한 한국의 미국과 양자협력이나 국제 다자협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촉구(urge)’라는 표현을 쓴 주한미대사관의 보도자료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 관계자는 2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한국 정부의 협력에 “감사”를 표하는 국무부 공식 입장을 밝힘으로써 한국 정부의 반발을 진정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최근 대니얼 글래저 미 재무부 테러단체자금 및 금융범죄 부차관보가 한국 관리들과 만나 북한의 불법 위폐활동에 대처키 위한 미국의 노력을 설명했으며, 앞으로 한국 정부와 이 문제에 대해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해온 일에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협력 평가 = 보고서는 1995년의 마약거래 관련 돈세탁의 불법화를 비롯해 97년의 금융실명거래법, 2001년의 `특정금융거래정보보고및이용법’ 제정과 그 이후의 각종 후속 입법과 규정 강화, 이들 법령에 따른 실적 등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한국 정부는 금융범죄와의 싸움에서 자발적인(willing) 파트너이자, 관련 국제협약을 이행해왔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또 한국이 “마약과 기타 심각한 범죄 관련 자산 파악, 추적, 동결, 압류, 몰수에도 미국 및 다른 나라들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테러문제와 관련해서도,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오사마 빈 라덴이나 알 카에다 조직원 혹은 탈레반 등과 연계됐다고 유엔안보리 결의 1267호 제재위원회가 작성한 명단과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이 작성한 명단 등을 각 금융기관에 통보하고, 미 대통령령 13224에 따른 미 정부의 테러리스트 명단을 즉각 한국 정부 리스트에 올리고 있는 사실도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아직 남아있는 엄격한 외환거래 규제 등으로 인해 “국제 금융범죄나 테러자금조달처로는 매력이 없는 나라로 여겨지고” 있으며, 실제로 한국에 테러리스트 금융계좌나 자산의 존재, 금융조달 사례 등이 파악된 게 없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한국의 돈세탁 및 금융범죄 당국이 조사 범위를 넓혀 상품거래와 산업밀수 관련 범죄가 국제 테러리스트 활동과 연계돼 있을 가능성을 계속 찾고 있다며 한국의 협력 사실을 특기했다.

보고서는 또 한국에서도 3만명에 이르는 중동 출신 외국인들 사이에 전세계에 거미줄처럼 퍼진 업자들의 개인적 신뢰를 토대로 이뤄지는 비공식 송금 시스템인 하왈라 시스템이 운용되는 점 때문에 이것이 테러자금 조달.세탁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한국 당국도 이에 관심을 돌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2% 부족 = 보고서는 그러나 한국의 금융범죄 방지.단속망에 2가지 구멍을 지적, 이의 조속한 보완을 촉구했다.

변호사, 회계사, 브로커, 딜러 등 금융 매개자(intermediary)의 경우 각종 돈세탁 방지 규제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점을 지적, 이들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주문했다.

또 하나는 테러자금방지법의 입법과 시행이다.

한국은 1995년 마약거래 관련 돈세탁을 불법화한 이래 계속 돈세탁 방지체제를 강화, 경제범죄, 뇌물, 조직범죄, 불법 자본유출 등 38개 활동의 수익금을 세탁하는 것도 추가로 불법화했다.

그러나 테러활동 지원 관련은 아직 불법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합법적인 업체가 마약자금 세탁에 이용됐을 경우는 이 업체를 압류할 수 있지만, 테러리스트 활동 지원 이유로는 다른 범죄가 없는 한 압류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한국은 이 보고서가 발표된 무렵 2개의 테러자금관련 방지법안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였고 보고서도 이 점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에 앞서 한국 정부가 유사한 법안들의 제정을 추진했으나 다수 정치인들과 비정부기구들이 정부의 과거 인권유린을 상기, 국가정보원에 의한 오용 가능성을 우려해 반대”함으로써 무산된 점도 아울러 지적했다.

미국이 테러자금조달억제법의 제정을 주문하는 것은 특별히 북한의 테러활동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한국내의 하왈라 시스템 존재에 대한 관심 등에서 보듯, 한국의 공식.비공식 금융시스템이 중동 테러활동과 연계될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미국은 연례 세계 테러보고서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계속 재지정하고는 있지만, 2004년부터는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이후 북한의 테러지원 증거가 없음을 특기하고 있다.

또 일본인 납치 문제가 지정 이유로 추가됐으나 미 당국자들은 북.일간 이 문제가 해결되면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워싱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