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벼랑끝 전술에 자승자박 간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지난 28일(현지시간) 기자회견 대북 발언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 때 외에는 북한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천명한 것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설명이다.

북한이 미국과 양자 대좌를 노린 벼량끝 전략의 일환으로 핵실험이라는 ‘불장난’을 하더라도, 미국은 북한 스스로 제공한 ‘물증’을 갖고 유엔 안보리나 확산방지구상(PSI) 등 국제사회를 동원해 제재에 나서면 나섰지, 북한과 양자 흥정은 없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발언은, 북한의 2.10 핵무기 보유 성명 이래 미 고위 관계자들의 일련의 대북 강성 발언을 추인하면서, 부시 대통령 자신을 포함해 부시 행정부가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 인식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폭정의 전초기지’ 등의 발언에 대해 미국의 사과를 요구하고, 부시 대통령의 28일 기자회견에도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부시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6자회담을 통해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고 행태 변화가 없는 북한정권을 ‘외교적으로’ 대할 생각은 없음을 보여줬다.

부시 대통령의 예상외 수준의 대북 발언에 놀라 배경을 탐문해본 외교소식통들은 30일 부시 대통령의 대북 자극이 특정한 수순을 상정하고 그쪽으로 몰아가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은 부인했다.

이들은 그러나 2.10 성명 이래 북한의 행태가 미 행정부를 자극, 기존의 대북 불신과 부정적 이미지를 더욱 심화시켰으며, 그에 따라 강.온류 가운데 강경기류가 미 행정부 안팎을 지배하게 됐고, 부시 대통령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성토도 이를 반영해 행정부 내부의 자제력이 약화된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상황은 북한 핵문제가 협상보다는 충돌 국면으로 갈 소지가 한층 커졌음을 말해준다.

이에 따라 “한국의 선택지가 좁아진 굉장히 어려운 국면”이라거나 “이제는 미국보고 더 양보하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등의 말도 나오고 있다.

한쪽엔 6자회담 테이블을 차려놓고, 다른 한쪽엔 ‘핵실험’이라는 사실상의 레드 라인(금지선)을 쳐놓은 채, 북한의 회담 복귀가 최선이지만 이를 위한 더 이상의 양보 조치는 없으며, 금지선 침범은 “네 책임(at your own risk)”이라는 미국의 입장은 최근 라이스 장관의 월 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 명료하게 드러났다.

금지선에 대해서는 그동안 ‘핵물질 확산’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그러나 제1차 북핵 위기 때 대북 협상의 주역이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학장은 27일 한 강연회에서 “핵실험이 무력사용의 기반을 제공하는 금지선 같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나로선 금지선이 핵물질의 이전인 것 같으며, 그렇게 희망한다”고 말해 사실은 부시 행정부가 핵실험을 금지선으로 간주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라는 관측과 핵실험은 북한이 쉽게 낭비할 수 없는 카드라는 관측이 엇갈리고 있으나, 라이스 장관은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자승자박 행위가 돼 “북한의 고립만 심화시킬 것”이라며 대미 카드로서 효력을 부인하고 있다.

미국에는 “별도의 유엔 안보리 결의 필요없이 국제법적 정당성이 있는 확산방지구상(PSI)이 항시 동원 가능한 상태”라는 것이 라이스 장관의 말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유엔 안보리에서도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핵 문제의 논의를 무조건 거부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핵 문제는 지난 2003년 2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보고했기 때문에 이미 안보리에 회부돼 계류됐고, 다만 그동안 6자회담에 논의가 ‘위임’돼온 상태이다.

이같은 상황에 따라 조만간 예정된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선택이 주목된다.

외교소식통들은 이 회담이 6월말이나 7월초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그 사이 북핵 문제가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알 수 없어 회담 내용을 예단하긴 어렵다”며 “정부와 국민 모두 회담 장소나 발표 형식 등의 문제에 대해 논란하기 보다는 북핵 문제의 엄중한 현실에 대한 성찰속에 한국의 좌표를 진지하고 신중하게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