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대사관 전격 교차 회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북핵 6자 수석대표 회담 개막에 하루 앞선 17일 베이징(北京)에서 이례적으로 상대국 대사관을 교차방문하며 현안에 대한 집중 협상을 벌였다.

지난달 21~22일 힐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 회동한 지 25일만에 재회한 양측 수석대표가 ‘교차회동’한 것은 북한 핵시설 폐쇄로 2.13합의에서 규정한 초기조치가 완료된 것을 평가하고 핵시설 불능화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 등 2단계 논의를 신속하게 진행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힐 차관보와 김 부상은 이날 오전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후 1차로 미국 대사관에서 정오(현지시간) 직후 회동한 뒤 중국대반점으로 장소를 옮겨 오찬을 겸한 협의에 들어갔다. 이후 일단 헤어졌던 두 사람은 다시 베이징 북한 대사관으로 장소를 이동해 2차 협의를 이어갔다.

힐 차관보는 이날 3시간40분여에 걸친 연쇄 협의에서 김 부상에게 연내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방안을 설명한 뒤 중유 95만t 지원과 테러지원국 해제 등이 이뤄지려면 북측은 돌이킬 수 없는 핵시설 불능화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이른바 `고농축우라늄(HEU)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전달하고 이 문제에 대한 북한측의 해명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맞서 김 부상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교역법 적용 등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해야 불능화를 완료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HEU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이 관련 증거를 제시하면 ‘해명할 용의’가 있음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상은 특히 불능화에 앞서 신고를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힐 차관보는 ‘신고-불능화 병행 추진’ 입장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측이 신고를 우선시하고 있으나 우리는 신고와 불능화를 합쳐서 가급적 빠른 시일내 2.13합의 이정표를 빨리 종료하는게 좋다는 입장”이라며 “한 문제로 인해 2.13합의 이행이 지연되는 사태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회동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를 비롯한 2.13합의 2단계 이행을 위한 로드맵 마련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재로선 장애물이 없다”고 밝혀 이날 북한과의 연쇄협의 결과에 만족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앞서 김 부상은 이날 평양을 떠나면서 일부 외신기자들과 만나 “2단계 조치의 목표와 6자회담 당사자들의 의무, 일련의 행동 등을 어떻게 정의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오후 러시아, 일본 측 수석대표와 잇따라 양자협의를 갖고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러시아, 한국-일본 양자협의와 관련, “이번 회담에서 달성해야 할 목표와 현안에 대한 두 나라의 의견을 듣고 우리의 견해를 전달했다”면서 “관심사는 다음 단계에서 어떻게 신고와 불능화를 조속히 완료하게 될 것인가였다”고 전했다.

앞서 천 본부장은 베이징에 도착, 기자들에게 “비핵화에 이르는 여정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힘들고 가파른 길이 남아있으며 북한이 이 길을 올라가면서 주저하거나 의욕을 잃지 않으면 밝은 세상이 온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6자회담의 본질적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머지 5자는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상응조치를 취하는데 모든 성의를 다할 것”이라며 “우리도 우리의 책임과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장국 중국은 18일 오후 2시(현지시간)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을 개최할 방침이다. 중국은 각국 수석대표들이 댜오위타이(釣魚臺)에 집결하면 간단한 의전행사를 가진 뒤 곧바로 현안 토론에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