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노무현 고백…”난 몰매만 맞은 불행한 대통령”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동녁)가 25일 발간됐다. 노 전 대통령이 진보주의 연구와 관련, 인터넷 카페에 남긴 육필원고와 참모진에게 구술한 육성기록이 담긴 책이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진보주의, 대통령 시절 정부정책, 보수 대 진보 대결구도인 국내 정치지형 등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자책에 가까운 반성도 진보세력에 대한 실망도 가감 없이 서술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자기의 생각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고 다닐 수밖에 없어 참 불쌍한 지위라는 생각이 든다”며 “달라이 라마 방한을 못 받아들였고 이라크에는 파병하는 등 국가적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말하는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한 것들이 있다”며 자책했다.


‘진보’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다양한 식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는 “상당 기간 세계의 역사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그리고 미래의 역사는 진보주의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사회적 논쟁의 중심 자리를 차지해야 지역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진보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보수와 진보의 가치 논쟁에서 핵심쟁점은 결국 복지와 분배”라며 “진보주의는 경쟁력도 유지하고 일자리도 유지해 줄 수 있고, 그러면서 빈부 격차가 완화될 수 있는 비전을 내놔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결국 돈 걷어서 혁신에 투자하고 사람에 투자하는 수밖에,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진보의 가치에 비추어 본 김대중·노무현 10년 정권에 대한 고백과 성찰도 이어졌다.


그는 “따로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 이런 것은 얘기하지도 말아라, 나는 그냥 불행한 대통령이다. 분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정부라고 몰매만 맞았던 불행한 대통령이다”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어떻든 진보주의도 ‘그거 우리도 할 수 있어’하면서 규제 혁파 많이 했어요. 그런데 ‘노동의 유연화, 그것도 우린 할 수 있어’하고 놔버린 게 진보주의의 제일 아픈 데죠. 가장 아팠던 것이 이 대목입니다”라고 했다.


또 “복지비 그냥 올해까지 30%, 내년까지 40%올려, 그냥 (색연필 들고)쫙 그어버렸어야 하는데…그냥 앉아서 이거 몇 프로 올랐어요? 했으니…무식하게 할 걸 바보같이 해서…”라고도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금융위기로 국가경제가 침체에 빠진 데 대해 노 전 대통령은 “미국 경제가 파탄 나고 세계 경제가 불행에 빠진 결과”라며 “어떤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가 경제를 망쳤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언급도 있다.


그는 “한국에서 진보의 시대는 가능할 것인가, 지도자를 기다리는가? 버락 오바마를 부러워하는 눈치다. 내가 보아도 부럽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한국이라면 버락 오바마가 당선될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금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 우리 쪽의 동질감을 만들어 주고, 우리는 착한 사람이고 뭔가 미래를 위해서 기여할 것처럼 하는 그런 분위기가 지금도 여전한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오늘도 대중적 분위기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거냐”면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거냐에 대해서 과거 반독재 구호처럼 한 개인을 타도하는 것, 한 세력을 타도하는 것, 그것이 아니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가고 다음 세기를 지배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가치 체계가 중요한 겁니다”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10월 가까운 참모진과 학자들에게 ‘진보주의 연구모임’을 제안, 비공개 연구카페를 개설한 후 서거 직전까지 1~5차 ‘진보의 미래’ 줄거리 초안과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소득불균형에 대하여’ 등 연구 글을 올린바 있다. 


‘진보의 미래’ 40여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연구위원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진보에의 화두를 기초로 연구를 진행한 2권과 각계 전문가와 일반시민들의 토론을 종합하는 3권도 곧 출간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