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學街, 보수-진보 논쟁 점화

▲28일 고려대에서 개최된 제1차 학생 진보보수 포럼 <사진 박형민 기자>

우리 사회 보수와 진보를 성찰하고 극심한 국론분열 양상으로 진행되는 보-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대학가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보수주의학생연대>와 <정치개혁대학생연대>는 28일 오후 3시 고려대 4.18 기념관에서 대학생 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한국 사회 최초의 대학생 보-혁 토론회를 개최했다.

‘20대가 바라본 보혁갈등의 허상’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진보와 보수를 포함해 십여 개 학생단체가 참가, 기성세대의 이념대결 양상을 비판하고 진보와 보수의 공존과 화해를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특히, 주최측은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핵심 쟁점인 대미관과 대북관을 주요 토론 주제로 제시해 참가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기조발제에 나선 <나라정책원> 김광동 박사는 우리 사회의 비약적 성장을 이끈 보수세력과 민주주의를 성숙시킨 진보세력의 존재를 모두 긍정하는 입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박사는 이어 우리에게 다가온 국가적 과제로 “북한의 자유화와 민주화”를 꼽고 진보와 보수가 이 문제에 머리를 맞댈 것을 주문했다.

김박사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의 과도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세력은 불행히도 우리 민족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며 “해방이라는 첫 번째 과제도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일본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이루어졌고, 한반도 전체가 소련 스탈린주의 위성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 위기를 극복한 힘은 미국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김박사는 이어 “북한 2천만 주민의 자유와 인권이라는 우리 민족의 세 번째 과제에서도 그 주도권은 현재 미국에게 가고있다”고 전제한 뒤 “미국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우리 스스로 북한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진보와 보수가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토론회는 보수측 발제자 3명과 진보측 발제자 3명이 나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치열한 설전을 벌이는 형태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진보-보수 개념부터 팽팽한 의견 차이를 내보였다. 또한 시장경제와 북한문제, 대미관계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보수주의 학생연대> 박세완(고려대 3년, 26세) 대표는 “일반적으로 보수는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이고 진보는 개혁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사실 개혁의 속도에 대한 입장차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면 보수는 현실을 중시하고 진보는 이상을 중시여기는 경향이 있다”면서 “두 세력은 변화의 속도를 견제하며 공존하는 세력이지, 대립하는 세력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진보측 패널로 참가한 <유니보터스(univoters)> 국승민(서울대 3년, 23세) 대표는 “진보는 여성, 평화, 인권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고 이것은 진보가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주장했다.

<대학생 세계화 포럼> 간사로 참여한 최옥화(동국대 3년, 26세)씨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좌우의 개념은 북한문제를 기준으로 나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사회 이념구도는 북한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전제한 뒤 “현재 우리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갈등은 주로 북한 문제에서 비롯된 체제 정통성, 한미관계, 대북정책, 국가보안법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최씨의 북한 문제를 통한 좌우 구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도 제출됐다. 고대 경영대 학생회장 홍명교(22세)씨는 “자신이 진보적인 좌파라고 생각하지만 김일성, 김정일은 독재자이며 북한 정권은 사회주의 정권도 아니다”면서 “북한문제를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를 가를 것이 아니라 자본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에서는 일부 극단적인 주장을 제외하고는, 현실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일부 대학생 방청객들은 “시장경제의 문제점은 시장경제로 극복될 수 없다며 현재 남미에서 실험되고 있는 좌파정부의 실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큰나라 겨레사랑> 이종건(서울대 졸업, 28세)간사는 “현재 시장경제는 우리가 경험해 본 최선의 체제라는데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며 “현재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서 부분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이를 부정하거나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거처럼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대북, 대미관 한국 보수 진보의 리트머스

북한이나 미국에 대한 입장 또한 상당한 견해차이를 드러냈다.
박세완 대표는 스스로를 ‘민족주의 보수’로 칭하면서 통일비용이나 단계적 통일론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보수진영을 공격했다. 그는 주변 강대국들과 대결하려면 민족주의를 강화해야 하고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민족을 대책으로 기아로 몰아넣고 대남 적화전략을 포기하지 않은 김정일과는 대화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대학생 세계화 포럼>최옥화 간사는 박 대표의 민족주의 보수 담론에 부정적 인식을 표명하며 자신은 사실 북한문제를 놓고보면 진보에 가깝다고 밝혔다. 민족주의 담론이 아닌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의 측면에서 북한문제에 접근할 것을 촉구했다.

<정치개혁 대학생연대> 정재훈(숭실대 4년, 25세)간사는 “우리 민족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미는 자주외교에 대한 갈망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언제까지 예속적인 역사를 대물림하고 되풀이 할 수는 없다”며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이제 득실보다는 세계평화와 정의, 자주 통일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 말미에 참가자들은 기성사회의 보수-진보 대결 양상을 실랄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기성사회가 대화를 통해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의 허상만을 가지고 선과 악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풍토가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부 패널들은 기성세대의 이러한 모습이 ‘적대적 공생관계’로 자기세력을 확산시키기 위한 비생산적인 대결형태로 흘러갈 때가 많다고 비판했다.

한편, <보수주의학생연대>와 <정치개혁대학생연대>는 대학사회부터 합리적인 진보 보수 논쟁이 필요한 시점으로 판단하고 이날 28일 고려대 4.18 기념관에서 제1차 학생 보수진보 포럼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연대포럼을 개최하기로 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