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참지도자’ 조세웅을 아시나요?

조세웅(출처 nkchosun)

북한은 권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다. 돈보다 권력을 선호하게 된 것은 권력을 얻으면 돈이 저절로 따라 들어오기 때문이다. 남한에서는 대통령이나 대법원장의 아들도 죄가 있으면 감옥으로 간다. 그러나 북한은 살인자도 권력과 돈이 있으면 살릴 수 있는 사회다.

북한은 3권 분립이 안 된 독재국가이기 때문에 당이 모든 사회기구의 상위에 군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 권력을 차지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권력만 쥐면 돈과 재물도 다 생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이 현실적으로 부정부패를 부채질하고 있다.

권력이 돈을 부른다

기자가 북한에 있을 때 ‘민족과 운명’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하한 영화였는데 실제인물이었다고 하는 ‘홍영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오직 권력을 위해 살았던 그녀의 일생을 통해 남한권력의 어두운 맥을 짚어 보여주려고 했다.

그녀는 남한에서 국회의원인 아버지의 인생철학 “권력을 위해서는 상대를 디디고 올라서야 한다. 독사처럼, 독사처럼”이라는 대사를 두 번이나 반복한다. 그만큼 남한에는 권력투쟁이 처절하고 권력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짓밟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상영된 후 도리어 북한 사회에 이 대사가 세간에 퍼졌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무자비하게 짓밟아야 한다’, ‘당비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비서의 비리를 들춰야 한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유행을 보고 기자는 어떤 비난이나 선동을 목적으로 한 부정적 이미지는 전염병처럼 초고속으로 유포된다는 것을 절감했다.

원래 공산주의의 구호는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이다. 이는 집단이 개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알고, 개인이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집단주의를 의미한다. 그런데 북한은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다. 오로지 수령개인이 독재하는 봉건군주국가다.

70년대 김정일이 집권하면서부터 북한은 집단주의 사회의 성격을 완전히 잃어 버렸고 서로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물고뜯는 이상한 사회로 변질되었다.

‘자리’ 차지하면 사람이 달라져

사람들이 ‘장’ 자리만 하나 차지하면 별로 말을 하지 않고 걸음새부터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또 보기 싫은 상관을 제거하기 위해 서로 각축전을 벌인다. 간부 계층에도 파벌이 많다. 예를 들면 당 기관은 책임비서파, 조직비서파로 나뉘어 서로가 물고뜯기 경쟁을 한다. 김정일이 조직비서를 할 때 노동당의 거의 모든 직능을 종합적으로 관장했기 때문에 지방에 이르기까지 조직비서들이 하는 기능은 꼭 같다.

간부 승진도 조직비서에서 책임비서로 올라가는 것이 상례인데, 책임비서가 공석이면 조직비서가 등용된다. 그런데 책임비서가 다른 곳에서 오거나 위에서 내려오는 경우, 조직비서 측근들은 새로온 책임비서 제거작전을 벌인다. 우선 책임비서의 비리를 들춰 주위를 오염시킨 뒤, 파면으로 유도한다.

지방주의, 할거주의가 강한 지방일수록 중앙에서 파견된 간부들이 일 년을 견디지 못한다. 평안북도 책임비서를 지낸 조세웅의 경우가 그렇다. 과거 함경북도 책임비서를 할 때 그는 인민들이 ‘조세웅 만세’를 부를 정도로 진짜 ‘인민적인 지도자’였다. 김일성도 “조세웅 만세는 나에 대한 만세입니다” 라고 두둔할 정도였다. 이렇게 신임을 얻은 그는 ‘일이 잘 안 되는’ 평안북도 책임비서로 배치되었다.

그후 2년이 지나자 조세웅도 결국 고배를 마시며 평안북도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 ‘제거작전’의 일화를 보면 지금도 쓴웃음이 나온다.

어느 날 당 간부들이 모이는 파티에서 조직비서 휘하의 측근들이 마실 줄 모르는 술을 조세웅 책임비서에게 연방 권했다. 체면을 차리다 못해 몇 잔 마신 책임비서는 비틀거리며 부하 직원에게 의지해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직원이 슬쩍 몸을 낮추어 책임비서가 그만 계단에 털썩 주저 앉게 되었다.

다음날 ‘책임비서가 술주정한다’는 신소(伸訴)가 중앙당으로 올라갔고, 항간에는 ‘책임비서가 술에 만취되어 산다’는 시시한 소문이 돌았다. 며칠 후 내려온 중앙당 신소 처리과(당내 신고를 받아 처리하는 부서)의 최종 결론은 조세웅의 해임 철직이었다.

진짜 ‘인민의 지도자’ 조세웅 책임비서

조세웅은 그후 공직에서 사라졌다가 잠시 정무원 사무국에 복귀했으나 98년 사망했다. 조세웅은 성격이 대쪽 같고 일하는 품새가 공사(公私)가 분명한 인물이었고 진정으로 인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마디로 원칙주의자였다.

조세웅은 함경북도당 책임비서를 하던 80년대에 북한 인민들의 신망을 많이 받았다. 그는 도 소재지인 청진시 건설과 인민들의 식의주 문제를 풀기 위한 사업을 벌여나갔다. 그는 검덕광산과 무산광산 등 중요산업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이고 그들의 후방공급 사업을 잘 해주었다.

매달 식량을 황해도 농촌까지 차를 가지고 가서 날라다 주었고, 육류를 공급하기 위해 목장건설도 추진했다. 함경북도는 원래 농경지가 적은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조세웅은 다른 도보다 명절날 고기와 쌀, 부식물, 생활필수품을 제일 많이 공급했다. 오죽했으면 인민들이 ‘조세웅 만세’를 불렀겠는가. 조세웅이 함경북도를 떠나자 함경북도는 식량공급이 다른 지방보다 가장 먼저 끊겼고, 어떤 사람들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김정일이 조세웅의 인기가 올라가자 그것을 참지 못하고 그를 해임했던 것이다. 만약 김정일의 실체가 남북 인민들 앞에 있는 그대로 밝혀지는 날, 김정일은 인민들의 분노의 화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