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오바마에 첫 ‘벼랑끝 전술’ 적용

북한이 14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에 응수한 ‘벼랑끝 전술’은 1990년대 들어 핵문제 등에 관해 미국과 협상에 나서기 시작한 이래 북한 불변의 협상 방식이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한국 및 중국과 접한 북한의 지정학적인 특성으로 인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미국의 군사행동이 불가능하다는 북한의 판단에서 기인된 것이다.

또 지속되는 경제난과 고립 등으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북한의 실정도 북한을 ‘이판사판’의 각오 아래 위기지수를 극대화시키는 벼랑끝 전술로 내모는 면이 있다.

북한은 특히 1인독재 체제와 달리 다수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여론에 민감한 미국의 정치체제를 궤뚫고 있어 고비마다 벼랑끝 전술로 미국을 협상장에 끌어내고 타협과 양보를 얻어낸 `노하우’가 있다.

북한은 자신들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며 혐오감을 숨기지 않은 부시 미 행정부를 벼랑끝 전술로 협상에 끌어냈다.

게다가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와 협상 경험도 있는 만큼, 대북 협상론인 오바마 행정부에게도 벼랑끝 전술이 주효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벼랑끝 전술의 단맛을 가장 톡톡히 본 것은 부시 행정부와의 대결에서다.

2005년 9.19공동성명 발표 직후 미국이 방코 델타 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자 북한은 6자회담 무기한 불참을 선언하고 급기야 2006년 7월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시험 감행으로 사활을 건 행보를 했다.

결국 공화당이 미국 중간 선거에서 대패하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압박 정책이 실패했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이라는 외양은 유지했지만 사실상 북한과 양자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보상은 없다”며 클린턴 행정부와 차별성을 강조하던 부시 행정부는 BDA에 묶였던 북한의 자금을 불법.합법 계좌를 가리지 않고 전액 자유롭게 찾을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2.13합의로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에 중유 100만t 상당의 에너지 지원이라는 막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북한은 또 작년 부시 행정부가 핵검증 의정서 문제로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늦추자 불능화 중단이라는 벼랑끝 전술로 맞서 결국 10월11일 ‘시료 채취 불가’ 원칙을 고수한 채 미국으로부터 명단 삭제를 얻어냈다.

앞서 2002년 제2차 핵위기가 불거져 미국이 대북 중유지원을 중단하자 북한은 핵동결 해제를 선언하고 이듬해 1월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는 등 벼랑끝 행보에 나서, 결국 북.미.중이 베이징에서 3자회담을 열고 핵협상 개시에 합의하게 됐다.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도 벼랑끝 전술을 애용했다.

93년 제1차 북핵위기 때는 영변 5㎿ 원자로 가동 중단, 폐연료봉 인출,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 등 잇단 강수 끝에 미국으로부터 200㎿경수로 지원, 완공때까지 매년 중유 50만t 제공 등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

또 96년 시작된 북.미간 미사일 협상이 지진부진하자 북한은 98년 8월 ‘광명성 1호’로 장거리 미사일 발사능력을 과시함으로써 같은해 9월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리게 됐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