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교황 장례미사 왜 했을까?

▲ 북한의 교회, 성당은 외부세계에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보여주긴 위한 전시용
이다 <사진:연합>

4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했다. 10일 4백만 신도들과 저명한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베드로 성당에서 교황 장례미사가 엄숙히 거행되었다.

세계인들이 슬픔에 젖어있던 교황의 장례식 날, 엉뚱하게 북한의 장충성당(長忠聖堂)에서도 1백여 명의 신도들이 모여 추모미사를 올렸다는 소식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일까?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사회주의 헌법에 종교, 집회. 언론,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긴 하지만 순전히 ‘문서상 자유’에 불과하다.

장충성당 교황 장례미사는 대외 연출용

이번 장충성당의 장례미사를 두고 일부 사람들은 ‘평양에도 가톨릭 신도들이 있구나.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할지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장충성당 장례미사는 북한인권문제 등이 국제적으로 거론되는 미묘한 시기에 ‘우리도 국제사회처럼 종교의 자유가 있는 정상적인 국가’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북한당국이 연출한 것이다.

북한의 종교는 한마디로 말해 ‘대외 전시용’이다. 김일성 종합대학에는 역사학부 종교과가 있다. 세계 4대 종교인 불교, 기독교, 천주교, 회교에 대해 가르친다. 그러나 가르치는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대학에 처음 들어가면 담당 교수는 “우리가 종교를 배우는 목적은 조선혁명과 주체사상의 종국적 승리를 위하여 지지자들을 늘여나가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한다. 결국 북한의 종교는 ‘통일전선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 도구인 셈이다.

목사, 신부들은 조총련에 있다가 북한에 귀국한 일정한 종교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교육시켜 통일전선부에서 임명한다. 외국인들과 해외동포들이 교회나 성당을 찾을 때 동석해주는 별도의 교인들을 ‘교육시켜’ 준비해놓는 것이다.

“바티까노는 제국주의 앞잡이 소굴”

북한 <현대조선말사전>에는 ‘바티칸’ 항목에 이렇게 적혀 있다.

“바띠까노는 인구가 1천 명 정도이고, 카톨릭 교황과 교직자들만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다. 바띠까노는 사이비 종교의 거점이며, 미제의 침략책동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제국주의 앞잡이들의 소굴이다.”

북한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들과 후대교육은 이러한 종교관에 따라 진행된다. 장충성당이나 봉수교회당에는 당국의 지시로 ‘성가대’도 만들었고,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비디오 테이프까지 제작하여 해외에 보내기도 한다.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북한 학생들이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다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 사실은 북한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렇듯 북한에서 종교가 겉과 속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순전히 국제사회에 ‘우리도 종교의 자유가 있고, 교인들의 신앙생활이 보장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부, 수녀도 없는 장충성당

평양시 선교구역에 위치하고 있는 장충성당은 대지 1,361평, 건평 151평의 작은 성당이다. 북한에서는 유일한 가톨릭 성당이다. 장충성당은 ‘조선천주교인협회’가 생겨나면서 북한 당국의 허락을 받아 지었다.

‘조선천주교인협회’는 89년 ’13차 평양청년학생 축전’을 앞두고 전세계의 광범위한 청년들과의 교류를 위해 김일성 대학에 종교학과가 생기던 시기에 생겼다.

북한은 장충성당을 지어놓고 1988년 10월, 교황특사를 맞이해 미사집전을 하기도 했다. 당시 남한의 전대협 대표로 13차 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 씨와 그를 동행했던 문규현 신부가 이곳을 방문, 미사에 참가했다. 신부와 수녀는 없고, 신도대표 2명이 매주 일요일 오전 미사를 세 차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에서 수십 년 동안 금지해왔던 종교활동이 교황 장례미사와 같은 큰 의식(儀式)으로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당국의 허가를 떠나서는 상상할 수 없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