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南에 ‘민족자주’ 강조한 이유…’제재완화’ 노림수?

北 "제재는 남북관계 개선에 백해무익"… 북미 사이 '샌드위치' 된 한국

북한이 미국의 대북제재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면서 우리 정부를 향해 ‘민족자주’를 강조하고 나섰다.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에 발맞추기보다는 남북관계 개선 문제에서 자주적인 입장을 세워 독자적인 행보를 보일 것을 주문한 셈이다. 남한을 활용해 대북제재 공조를 약화시켜 제재 완화를 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일 개인필명 논설에서 “판문점선언 이행에서 민족자주의 입장을 고수해나가는 것은 우리 민족이 조국통일문제의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라며 “현 정세는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독자적인 판단과 결심에 따라 풀어나갈 것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특히 “지금 미국은 싱가포르 조미(북미)공동성명과는 배치되게 일방적인 비핵화 요구와 최대의 제재압박을 고집하면서 북남관계의 속도조절까지 운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대북제재 이행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는 미국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러면서 신문은 우리 정부를 향해서도 “상대방에 대한 제재는 북남관계 개선에 백해무익하며 조선반도(한반도) 정세완화에 배치되는 대결정책의 산물”이라며 “외세의 눈치를 보며 구태의연한 제재압박 놀음에 매달린다면 북남관계의 진정한 개선은 기대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신문은 앞서 지난달 31일에도 ‘무엇이 북남관계의 새로운 여정을 가로막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미국의 눈치를 보며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북한의 이 같은 메시지는 대북제재 완화 혹은 해제라는 목적 달성 차원에서 남한의 역할을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을 설득하는 일에 적극 나서거나 독립적인 행보를 취할 것을 요구·압박함으로써 국제사회 대북제재 전선에서 한국을 이탈시켜 틈을 벌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제재의 해제를 원하는 것인데, 미국의 입장이 워낙 완고하니 대북제재망을 약화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지금 북한은 미국의 제재에서 벗어나 경제적인 상황을 호전시키는 것과 핵 문제에서 시간을 끌면서 지연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편으로는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제재를 완화하며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통해 대북제재 완화를 유도하면서 동시에 한미관계 균열을 노려 비핵화 공세를 약화시키려는 속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

이 가운데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우리 정부의 부담도 갈수록 가중되는 모양새다. 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이 실현되기까지 제재를 유지해야한다’며 미국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지만,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 등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해서는 사안에 따른 제재 완화도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북미 간 기싸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모두를 고려해야하는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책연구기관 소속 전문가는 “현재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상당히 중요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이런 식으로 압박해오면 입장이 더욱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그럼에도 한국 정부의 일차적인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이기 때문에 대북제재의 국제공조가 약화되는 방향으로의 정책 설정은 경계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아울러 신범철 센터장은 “비핵화가 예측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재 완화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로서는 지속적으로 북한에 ‘비핵화에 성의를 보인다면 제재는 완화될 것’이라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미대화가 좀처럼 진전되지 않으면서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도 점차 좁아지고 있는 가운데, 오는 3~4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으로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ARF 계기에 남·북·미 외교수장이 한 자리에 모이는 만큼, 꽉 막힌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미 지난달 31일 싱가포르로 향했으며,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오는 3일 싱가포르에 도착할 예정이다. 남북·북미 양자 또는 남북미 3자 간 외교장관회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국과 미국 모두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