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南대통령 실명직접 비난, 8년만의 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일 ‘논평원 글’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며 이 대통령에게 “역도”라는 험한 표현을 썼지만, 사실 북한은 2000년 6월15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엔 역대 거의 모든 대통령에게 같은 표현을 쓴 일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상회담 이전엔 2000년 3월 북한의 대남 유령단체인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부터 같은 말을 들었다.

이 단체는 ‘한일회담 반대시위’ 36돌 기념 기자회견에서 당시 김 대통령이 미국 및 일본과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것을 이유로 “미일 침략자들과 공모하고 있는 김대중 역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단체는 북한이 남한의 지하당이라고 주장하는 유령단체인 데다 그 이후 8년만의 일이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이러한 심한 표현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남북간 체제경쟁이 극심했던 냉전시대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나 김종필 당시 총리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역도”라고 비난했으며,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에 대해서도 과거 같은 표현으로 공격했다.

장면 전 총리에 대해선 “사대매국노”라고 지칭했었으나, 윤보선 전 대통령과 최규하 전 대통령에 대해선 실권이 없었기때문인지 별로 험한 공격을 하지 않았다.

북한은 옛 소련 붕괴로 국제적인 냉전체제가 해체됐으나 남북관계에서는 여전히 긴장이 감돌았던 김영삼 정부시절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실명을 들지 않은 채 “문민 역도”, “문민 괴수” 등이라고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논평원 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핵을 이고 우리가 통일하기 힘들고, (북한과) 본격적 경제협력을 하기도 힘들다”고 말한 대목을 가리켜 “이것은 이전 김영삼 역도가 ‘핵을 가진 상대와는 악수하지 않겠다’고 떠벌인 것을 신통히 방불케 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초기 김 전 대통령을 “현 당국자” 등으로 표현하던 북한은 1998년 중반 들어서면서 “괴뢰 통치배” “괴뢰 대통령”, “김대중은 김영삼과 더불어 죄악의 쌍둥이로 기억될 것”이라는 등으로 험하게 비난했으나,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이후 이런 표현들이 사라졌다.

이후 남북간 갈등 사안이 발생해도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을 거론하지 않고 남한 당국 일반으로 돌려 비난했으며, 2002년 6월 서해교전 때조차 비난 대상을 “남조선 군부”, “군 당국자” 등으로 한정하고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을 삼갔다.

이런 기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시절에도 계속됐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대북송금 특검 때 북한 매체들은 대북송금 특검법을 비난하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남조선 현 당국자는 내외의 압력에 눌려 특검의 실시를 허용했다”는 정도의 언급에 그쳤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김일성 주석 10주기 추모대표단의 방북을 불허하자 평양방송은 7월19일 “누가 북으로의 길을 막았는가, 그것은 노무현”이라며 “천륜을 거스른 자는 천벌을 면할 수 없다”고 맹비난 한 것이 실명으로 직접 비난한 유일한 경우였다.

당시 정부는 통일부 당국자의 논평을 통해 “그동안 정부가 여러차례 납득할 만한 입장을 밝혀왔음에도 북측이 조문방북 문제를 다시 거론하면서 정부를 비난하고 대통령까지 거론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강하게 대응했었다.

이날 북한 매체들은, 중앙통신의 경우 통상 오전 9시 노동신문 주요 기사 제목을 먼저 소개한 뒤 기사 전문을 게재하던 것과 달리 문제의 기사 내용을 오전 5시54분 첫 보도했으며,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등이 일제히 같은 내용을 반복 보도하는 가운데 중앙방송은 6시 첫 뉴스에서 다른 뉴스는 전하지 않은 채 이 논평원 글만 내보는 등 이례적인 보도행태를 보였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