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학계 단군·고대사 공동연구에 ‘적극’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영훈 교수는 2일 개천절을 앞두고 북측의 고대사 연구에 대한 열의와 적극성을 높이 평가했다.

정 교수가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군학회’는 최근 북한의 조선역사학회와 공동연구를 집대성한 논문집 ’단군과 고조선연구’(지식산업사 刊)를 펴냈다.

이 책은 남북한 학자들이 2002년부터 3차례의 공동 학술회의와 연구를 통해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를 살핀 논문 22편을 담았다.

두 학회는 2002년 10월3일 평양에서 1차 학술회의를 진행한 이후 2003년 10월 평양, 올해 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회의를 계속했다. 4차 회의는 이달 중 다시 평양에서 열 계획이었으나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잡지 못했다.

정 교수는 “두 학회의 공동연구는 남북 학계에서 최초의 형식이었다”며 “북한 학계는 최근 상고사 연구를 계속하면서 이론적, 실증적 토대를 탄탄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1993년 10월 평양 단군릉 발굴보고를 내놓으면서 민족 고대사에 대한 연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지금은 남북이 단군을 민족 정체성의 구심점으로 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북측의 단군에 대한 태도는 부정적이었다.

해방 직후 남한이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삼아 개천절을 제정하고 홍익인간 이념을 강조하며 단기를 공식 연호로 채택하기까지 했지만 북측은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단군을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북한이 1993년 단군릉 발굴 결과를 내놓으면서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북측은 이때부터 단군을 실존 인물로 보고 유적 및 유물 복원작업 계속했다. 당시 북한 사회과학원은 연대 측정법의 일종인 ’전자상자성 공명법’을 이용, 단군릉에서 나온 남녀의 유골이 5천11년 전의 것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1980년대 중반부터 민족의 우월성과 자주성을 강조한 ’조선민족 제일주의’에서 한 걸음 나아가 ’단군민족’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남측 학계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공산권이 몰락한 뒤 북측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하고 있다.

또 남한의 주류 사학계는 연대측정법의 부정확성, 상고사에 대한 해석 차이 등을 들면서 북한의 고대사 연구에 불신을 드러냈다. 단군릉 발굴보고 직후 “북측의 역사학은 죽었다”는 ’사망선고’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 사학계의 반론에 재(再)반론을 펴고 공동연구를 통해 논증을 시도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북측 학계의 주장을 성급하게 매도하거나 비학문적 견해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남북 학계의 고대사 입장차를 토론과 공동연구를 통해 좁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단군학회와 조선역사학회는 4차 학술회의를 통해 ’민족 상고사의 주요 쟁점’을 주제로 한 2차 공동연구(2004-05년) 결과를 발표하고 3차 공동연구 주제를 논의할 계획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