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들이 반항공훈련을 기다리는 이유는?

북한에선 해마다 5월 중순과 8월 말경에 민방위훈련의 일환인 대피훈련(반항공훈련 또는 소개훈련)이 전국적으로 진행된다.


적의 공격에 대비한 훈련이지만 북한 주민에겐 다소나마 휴식의 한 때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탈북자들은 “김일성·김정일 생일보다 더 기다려지는 명절 아닌 명절이다”고 회상했다.


인민보안부가 주최하는 이 훈련은 지역마다 실시하는 일시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봄과 가을에 1박2일로 진행된다. 중앙에서 훈련 날짜가 내려오면 각 도 보안국 반항공처가 시 보안서 반항공과에 통보하고, 이는 다시 인민반에 포치돼 인민반회의를 통해 주민들에게 알려진다.


민방위 훈련을 강화할 데 대한 김일성의 방침으로 1980년대부터 시작한 반항공훈련은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엄격하게 진행됐다.


싸이렌 소리가 울리면 공장기업소들에서는 집단적으로 모여 모자와 어깨 부위에 나뭇가지나 풀을 꽂고 천막을 가지고 움직인다. 부양가족들은 인민반의 인솔로 산으로 신속히 대피한다. 10시부터 다음날 오후 2시까지 거리에는 모든 차와 사람의 이동이 통제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주민들은 이 훈련을 소풍이나 야유회로 즐기고 있다. 공장기업소들에서도 갖가지 음식과 술 등을 준비해서 지정된 산에 올라가 오락회(노래와 춤)나 체육경기를 한다.


노약자나 환자가 있는 집들은 사전에 시 보안서 반항공과에서 훈련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증명서를 발급받는다. 보호자도 훈련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이날 온 가족은 집에 모여 명절처럼 즐긴다.


대학생들이 검열성원으로 선발돼 집집마다 훈련정형을 검열하기 때문에 시 안전부 반항공과에 뇌물(고양이 담배 2갑이나 술 3병 정도)을 주고 사전에 증명서를 발급받는다.


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한 젊은 사람들은 친구들끼리 모여 음식을 준비해 국가가 지정한 장소가 아닌 다른 곳(강 등)에 모여 낚시 등을 하면서 즐긴다. 증명서 발급과정에서 뇌물 등이 통용되기 때문에 점검도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대피 집결지에서도 참가정형을 확인하지 않는다.


결국 대피훈련에는 ‘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한 주민들만 참여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조차 김(金)부자 생일보다 반항공 훈련 날을 더 기다린다. 조직적인 행사나 회의에 참가해 구호를 외치고 만세를 부르는 국가적인 명절보다 누구의 통제도 없이 가족들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2008년에 탈북한 최 모 씨는 “소개훈련 날에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모여 안으로 문을 잠그고 한국 영화를 많이 봤다. 이틀 동안 ‘천국의 계단’, ‘유리 구두’ 같은 드라마를 자지 않고 보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자 김 모 씨도 “어떤 때는 친구들끼리 모여 강이나 저수지 같은 곳에 가서 고기도 잡고 체육경기도 했다”면서 “북한에서 제일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아마 소개훈련 할 때일 것”이라고 추억했다.


북한 주민들은 또한 이 날에는 평소에 먹지 못하던 고기나 과일을 먹으려고 전날부터 장마당에서 필요한 물건을 준비한다. 이 때문에 소개훈련이 임박하면 장마당에서는 물건과 음식 값이 일시적으로 오른다. 1년 365일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장사꾼들도 이날만큼은 장마당에 안 나간다. 


양강도 혜산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했던 신 모 씨는 “김일성·김정일 생일에도 장마당에 앉아 장사를 했지만 반항공 훈련 날은 휴식했다”며 “어차피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는 이날은 우리 장사꾼들도 허리를 펼 수 있는 유일한 명절이었다”고 말했다.


전시 폭격을 대피하는 훈련임에도 북한 주민들이 이날을 기다리는 것은 국가가 아닌 주민들 스스로가 정한 ‘명절’이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