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소식지가 전한 ‘북한 주민의 말’

북한의 내부 소식을 묶어 전하겠다는 격월간지 ‘림진강’ 창간호에는 현지 주민의 ‘증언’이 비교적 생생하게 담겨 있다.

아시아프레스측이 20일 창간 기자회견에서 배포한 창간호에는 “(북한) 당국에 독점돼 온 조선발 목소리를 민중에 기회를 주어 게재한다”는 취지에 따라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많이 실렸다.

이 가운데 지난해 10월 실시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조선민중의 목소리’ 코너를 보면, 핵실험 직후 인터뷰에 응했다는 ’40대 사법기관 간부’는 “핵실험을 지상이나 해상에서 세계가 다 볼 수 있게 당당히 할 수 있는 나라는 초대국들 뿐이야. 우리의 핵실험은 그것들과는 성격이 판판 달라”라면서 핵실험 실시 배경에 북한의 국제적인 고립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가 없는 우리는 개밥에 도토리야. ‘도와달라, 살려달라’ 암만 했는데도 안 도와줬어”라며 “영원한 형제친우가 없다는 게 당 내부의 목소리야. 중국이 미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돼 우리를 배신하니까, 우리 나라가 지내(너무) 힘 없으니까, 중국 압력에 견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국에 등 돌릴 수도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하디”라고 말했다.

또 “우리를 제쳐놓은 세계를 적당히 놀래우면 사태가 바뀔지도 모른다…이게 바로 ‘지구를 깬다’는 최고사령관의 전술”이라면서 “그래,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얼마나 기뻤으면 핵실험 선언을 하고 나서, ‘해방 다음으로 긍지스럽다’고 만족해 했겠나. 장군님이 국방위원장 됐을 때인 93년에 ‘제2의 해방’이라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말한 후로 ‘해방’ 소린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40대 산림감독원’은 “핵실험은 부시가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한 것이지…조.중관계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

다른 자리에서 ’30대 후반의 행정기관 서기장’은 “장군님은 완전히 성공했어. 물고기 한마리도, 사람 한명도 죽지 않는 강한 폭발실험을 해냈거든”이라고, ’30대 중반의 철물상’은 “그거야 우리 나라를 인정해 달라고 쏜 특수한 핵이지.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를 인정하라는 예술이란 말이야”라고 흥분했다.

북한의 만성적인 경제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어느 중앙기업소의 책임간부’는 지난해 5월 인터뷰에서 “현재 조선에는 나라의 경제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면서 “근래에 와서 우리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위한 경제활동 일절(일체)을 위법으로만 정의하는 현 경제제도가 사회주의적이냐, 자본주의적이냐 하는 판단의 기로에 스스로 도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전후 세대들에게는 시장경제의 경험도 지식도 없는데, 현실적으로는 장마당 이외에 다른 삶의 방도가 차례지지(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반대로…현재 국가적 기득권을 장악한 구세대는 핵무기 등 총대를 쥐고 명색뿐인 이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를 지구상 최후까지 유지하려고 필사적이다”라고 냉소했다.

이 간부는 그러면서 “‘사회주의를 버리느냐, 고수하느냐’라는 두 (신.구)세대간의 경제적 충돌은 본질적으로 사회 대결로 승화돼 가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는 “하지만 지금 최약체화된 조선의 경제 현실은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정치적 결론만을 더 이상 앉아 기다릴 수 없게 됐다”며 “왜냐면 사회가 파탄돼 국가가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민족의 운명적 문제로 그 성격이 짙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북한 내부문제가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이어 그는 “인민이 국가를 재건해야 할 문제조차 제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국은 잘 못버티고 있다”면서 “이제는 인민 스스로 각자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 나라를 알고, 나아가 세계를 알고, 이에 기초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한 토론을 벌일 때가 왔다”고 말해 ‘피플 파워’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눈여겨보면 고난의 조선은 비관적이고 암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며 “놀라운 것은 국가 경제가 파탄되고 국영상점은 텅텅 비었는데 장마당에는 오히려 별의별 물건이 차 넘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심지어 연착으로 멈춰선 열차에 세숫물을 떠가지고 (거래하려고) 나타나는 산골 여인들의 지혜에는 그저 탄복할 뿐”이라고 ‘인민의 자생력’을 가리켰다.

소식지에는 이렇게 정치.경제 등 무거운 주제 뿐 아니라 ‘중학생 행방불명’, ‘원산 가족 살인사건’ 등 사건사고와 염색머리 단속을 두고 ‘규찰대’와 젊은 여성 사이의 승강이 등 일상생활의 이야기도 실렸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