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분계선 통과 제한조치 배경과 전망

북한 군부가 군사분계선(MDL) 통과에 대한 엄격 제한 및 차단조치를 밝히고 나온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불만을 행동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북한측의 통지문은 6.15공동선언과 10.4남북정상선언에 대한 남한 정부의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가 최종적으로 확인됐다”며 “지금 이러한 입장과 태도는 선언에 따른 모든 북남합의를 노골적으로 파기하는 엄중한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고 조치 배경을 분명히 밝혔다.

북한의 조치가 내달 1일부터 실제 시행되면, 그동안 경색국면에 갇혔던 남북관계가 본격적인 대립국면으로 한 단계 더 악화될 전망이다.

북한의 ‘행동’은 또한 미국에서 대북 직접 대화에 적극적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남한 정부에 대북정책 전환과 개성공단 폐쇄를 포함한 남북관계 전면차단중 양자택일하라고 압박하는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북한은 그동안 현 정부가 10.4선언에 대한 `선별적 이행’ 원칙을 고수하는 데 불만을 표시하면서 현 정부의 대북 상생.포용 정책은 ‘비핵.개방 3000’ 구상의 포장에 불과하며, 이 구상은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연계시킨 것으로 부시 미 행정부 초기 대북 압박정책과 같은 것이라고 규정, 배척해왔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뒤 남측에서 거론된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과 ‘개념계획 5029’의 작전계획화 등에 대해서도 ‘흡수통일론’이라고 반발하는 등 이명박 정부가 기본적으로 자신들에게 적대적 입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은 지난달 16일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남북관계 전면차단 등 `중대결단 검토’를 언급하면서 “우리의 최고 존엄을 감히 건드리는 것은 우리 체제에 대한 정면도전이고 선전포고”라며 “우리는 북남관계를 귀중히 여기지만 그 누가 우리에게 도발을 걸어온다면 대결에는 대결로, 전쟁에는 전쟁으로 단호히 맞받아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그동안 남쪽 보수단체의 대북 전단살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 때문에 전단 문제의 비중을 크게 보기도 했으나 전단 문제는 단순히 매개물일 뿐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노무현 정부 때도 장관급회담 등에서 전단 살포나 금강산 지역에서의 보수단체 행사 등을 문제삼기도 했지만 남측 대표단의 해명을 듣고 넘어갔었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북측이 전단지 문제 등을 제기하면 우리는 주의하겠다는 언급을 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특수성상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설명했었다”고 말했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북측은 남북관계를 이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변을 내놓으라고 남측을 압박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도 대북 정책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통해 향후 대응조치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일단 경의선 육로를 통해 개성을 드나드는 인원과 차량, 물자에 대한 검문과 검색을 강화하는 조치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북측 통지문은 “육로통행을 엄격히 제한, 차단하는 우리 군대의 실제적인 중대조치”라고 언급함으로써 당장 전면차단 조치를 취하는 것은 아님을 시사했다.

정부도 북한이 출입자 선별을 까다롭게 한다거나 출입 허용시간대를 축소하겠다는 뜻으로 봤다.

북측이 통관절차를 까다롭게 하면 개성공단 입주기업이나 개성에 체류하는 남측 인원으로선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현대아산의 개성관광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북측으로부터 아직 통행제한관련 연락을 받은 게 없다”면서 “관광객을 받지 않겠다고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개성관광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측이 분계선 통행 제한조치의 발효를 보름여 뒤인 12월1일로 미룬 것은 그 사이에 남한 정부의 대응조치를 지켜보면서 실제조치의 수위를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평상시 같으면 바로 차단했을 텐데 시간적 여유를 둔 것으로 보면 남쪽의 태도를 보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한 정부가 북한의 압박에 앞으로 십수일만에 대북정책을 전환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에서 북한의 `보름전 경고’는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남측에 넘기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개성공단의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최근 계속되고 있는 남측에 대한 경고성 행위의 일환일 수 있다”고 기대섞인 관측을 내놓았으나, 북측은 통지문에서 이번 조치를 “1차적”이라고 명시한 만큼 2차, 3차로 수위를 높인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개성공단 전면 철수라는 다음 단계와 수순을 남겨놓은 셈”이라며 “개성공단 철수가 최종 단계라면 이번 조치는 ‘살라미 전술’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북핵협상이나 남북협상에서 극단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한 뒤엔 상황 변화가 없으면 단계적으로 실질적 조치를 취해 나간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조치가 궁극적으로 개성공단 입주업체의 철수 등의 조치로 이어질 개연성도 적지 않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통일부는 이러한 민감한 상황을 반영해 대변인 논평에서 “우리는 6.15선언과 10.4선언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남북간 합의들의 정신을 존중하며 그 중에서도 북한이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6.15, 10.4선언의 이행을 위해 현실적인 기초 위에서 구체적으로 협의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다”고 명시했다.

그동안 10.4선언의 이행 “여부”를 논의하자고 언급하던 정부가 “특히” 6.15, 10.4선언을 지목해 두 선언의 “이행을 위해” 협의하자고 밝힘으로써 미묘한 표현 변화가 주목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국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후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환경조성이 필요한 북한이나,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은 이명박 정부나 모두 남북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며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