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도착부터 中발표까지 ‘007작전’

북한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프로그램 신고서를 제출한 26일 마치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연막 전술을 펼쳤다.

베이징 주재 세계 각국 특파원 50여명은 북한 고려항공이 도착하는 이날 오전 11시50분(이하 현지시간) 훨씬 이전부터 베이징 서우두(首都)국제공항 귀빈실 입구에 진을 쳤다.

공항 귀빈실 입구를 지키는 공안으로부터 “중국 주재 조선대사관 의전차량이 귀빈실 주차장을 이용하겠다며 이미 예약을 했다”는 말을 듣고 기자들은 잔뜩 긴장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이 부상이 직접 핵신고서를 제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항 안내판에 고려항공 여객기가 예정보다 이른 오전 11시5분에 착륙했다는 신호가 들어오고 낮 12시가 넘어서도 북한 관리들이 나오지 않자 기자들은 조바심이 났다.

낮 12시8분. 6자회담이 열릴 때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항상 함께 다니는 수행비서가 일반인 출구로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자들은 일제히 일반인 출구로 몰려갔다.

검은색 서류가방을 든 그는 김계관 부상은 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 부상 없이 나 혼자 다른 일 때문에 나왔다”면서 핵신고서를 갖고 오지 않았다고 강력 부인했다. 이름과 직책을 확인할 수 없는 이 북한 관리는 기자들의 질문을 뿌리치고 주중 북한대사관이 미리 준비한 90호 의전차량인 벤츠 승용차를 타고 주중 북한대사관으로 향했다.

이에 대해 북한 소식통들은 “만약 기자 동무들 앞에서 중국에 제출할 핵신고서를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이들은 “북한이 핵신고서와 같은 중대 문서를 팩스로 주중 북한대사관에 보냈다는 얘기가 있는데 말도 안된다”면서 “핵신고서는 오늘 인편으로 주중 북한대사관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당초 일정대로라면 북한이 핵신고서를 이날 오후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에게 제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중국 외교부 정문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다.

오후 2시30분 주중 북한대사관 소속 25호 의전차량이 중국 외교부 정문을 통과해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핵신고서를 제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5분 뒤인 오후 2시45분 정례 브리핑에서 “오늘 오후 5시 북핵문제와 관련해 중대 발표를 하겠다”며 “외교부 브리핑실로 와달라”고 발표했다.

외교부 정례 브리핑실에 몰려든 세계 각국 특파원들은 북한이 이미 핵신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판단하고 긴급뉴스와 긴급 자막방송 등을 보내기 위한 비상 준비체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오후 5시 기자들 앞에 등장한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은 미리 준비한 짤막한 성명을 1∼2분 정도 낭독하고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은 채 황급히 사라졌다.

기자들은 중국 외교부 직원이 뒤늦게 배포한 성명서에서 “북한이 26일 핵신고서를 의장국에 제출할 것”이라는 구절을 보고 북한이 아직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핵신고서를 제출하고도 발표 시점을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발표와 동시에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들은 최진수 주중 북한대사가 오후 5시30분 중국 외교부에서 우다웨이 부부장을 만나 핵신고서를 최종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알려왔다.

북한 소식통들은 어차피 제출할 핵신고서를 왜 이렇게 연막을 치느냐는 질문에 “국제정세의 큰 흐름이 중요하지 기술적인 사항을 일일이 공개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