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규탄결의안 기권…정부 “美와 상의” vs 野 “北 눈치보기”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 실험을 규탄하는 유엔총회 군축위원회 결의 3건 중 2건에 기권표를 던진 것과 관련, 정치권에서는 논란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미국 등과 협의했다”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야권에서는 “북한 눈치보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단 강 장관은 30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종합감사에서 “해당 결의는 이번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는 54개 결의안 중 하나로 1994년부터 채택됐고, 저희는 찬성을 하다가 2015년부터 기권으로 돌아섰다”면서 “(정부가) 기권하도록 방침을 내렸다”고 밝혔다.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이 “북한의 눈치 보기를 위해 그런 게 아니냐. 한미 간에 문제는 없냐”고 묻자 강 장관은 “미국 및 주요국들과 (현장에서) 긴밀하게 협의를 하면서 (기권을) 했다”고 답했다.

앞서 정부는 유엔총회 군축위원회 결의 중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핵무기를 비난하는 결의 ‘L35호’에 인도, 브라질, 이집트 등과 함께 기권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시리아 등 4개국은 이 결의안에 반대했다.

또한 정부는 L35호와 별도로 북한을 규탄하는 내용이 담긴 결의 L19호(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하여)에도 기권했다.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과 관련한 결의 L42호에는 정부도 찬성표를 던졌다.

두 개의 북핵 규탄 결의안에 정부가 기권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당시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북핵 문안, 핵 군축에 대한 우리 입장, 각 결의 구체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리 입장을 결정해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당국자는 특히 “‘핵무기 전면 철폐를 위한 단합된 행동’ 결의(L35호)는 특정국(일본)의 원폭 피해 문제가 지나치게 강조돼 기권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관한 언급이 누락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실제 결의안에 담긴 문구 중 “피폭 지역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세계 지도자들이 방문한 것을 환영한다”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국제기구의 구호를 적극 지지한다”는 등은 일본을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로 강조하는 듯한 뉘앙스로 읽힐 여지가 있다.

이와 함께 외교부 당국자는 결의 L19호 기권 이유에 대해선 “‘핵무기 금지조약’에 관한 내용이 강조돼 기권했다”고 설명했다. 이 결의안에 찬성하는 건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공약과 상호 배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핵보유국들은 L19호에 반대했다.

하지만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강력히 규탄한 결의안 채택에 기권을 표한 데 대해 신중치 못한 결정이란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2년 전부터 동 결의안에 기권해오고 있다면서 대북 저자세 논란을 피하려는 모습이지만, 북핵 위협이 나날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몇 년 전 결정을 끄집어내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지난 2년간 L35호에 반대해온 미국마저 올해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것 역시 북핵 위협의 심각성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그간 대북압박에 소극적이란 지적을 받아온 문재인 정부가 북핵 규탄 결의안에 기권하면서 자칫 한미공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번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안보 무능, 안보 포기, 안보 불감증에서 나오는 소위 엇박자 외교, 나홀로 외교의 결정판”이라면서 특히 미국이 찬성한 결의안에 기권한 것은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어 “북핵규탄 결의안 기권 사태의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어떤 과정과 이유로 기권을 행사했는지에 대해 국민에게 분명히 밝히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면서 “이런 규명이 없다면 강력한 항거와 함께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낼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기권 사태가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던 2007년 11월 20일 유엔의 대북인권 결의안을 북한 김정일에게 결재받고 기권했다는 의혹의 시즌2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의원도 이날 자신의 SNS 페이스북에 ‘북한 핵무기 전면 폐기 결의안 기권한 외교부 장관, 국민께 사과하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하 의원은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치 핵무기 전면 폐기 결의안 내용을 비교해보니, 올해 결의안은 과거 2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면서 “북한을 언급한 게 2015년에는 4번, 2016년에는 5번, 올해는 11번 나온다”고 지적했다.

하 의원은 이어 “외교부는 이 결의안을 일본 핵 피해자 지원 결의안으로 생각했다고 하는데 내용을 보면 일본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핵 피해자 문제만 딱 한번 나온다”면서 “어떻게 외교부가 이런 비뚤어진 눈을 가질 수 있는지 굉장히 경악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본에 핵을 폭격한 미국은 이 결의안에 찬성했다”면서 “한미공조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외교부에 치명적 결함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의식도 든다. 미국과 협의해  2017년 핵무기 전면 폐기 결의안은 북핵을 겨냥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입장을 바꿔야 한다고 인식했어야 하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외교부에 한번 기권하면 영원히 기권한다는 생각을 가진 막가파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면서 “과거에 외교부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하다 찬성으로 바꾼 적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 기권하다가 찬성할 수 있는 게 외교이기 때문에 이번 외교부 장관의 핵무기 전면 폐기 결의안 기권한 것은 정말 잘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